구레네 출신의 시몬(Simon of Cyrene)은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를 오르실 때 쓰러진 예수를 대신하여 강제로 십자가를 운반했던 사람이었다(마 27:32, 막 15:21, 눅 23:26). 그의 출생이나 나이 등은 정확히 나타나 있지 않다. 다만 그는 유대인이 많이 거주하고 있던 알렉산드리아에서 서쪽으로 약 700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는 북아프리카 해안의 한 마을인 구레네(Cyrene, 리비아 지역으로도 알려져 있다) 출신의 디아스포라 유대인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유대인의 규례에 따라 매년 열리는 유월절 축제에 참석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을 방문하였다가 재판을 받고 형장으로 끌려가는 예수의 행렬을 구경하게 되었고 운명적으로 이 사건에 휘말리게 되었다. 시몬은 나무 십자가를 대신 짊어졌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우리의 죄와 허물을 담당하기 위한 대속의 십자가를 지셨다. 시몬은 그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를 다 오른 후에야 비로소 자유의 몸이 되었다. 그리고 그는 양손과 발에 못이 박힌 채 골고다 언덕 위에 세워지는 십자가를 보았다. 그의 어깨에서 떨어져 나간 그 십자가에 주님이 못 박히셨다. 시몬은 우뚝 세워진 십자가 밑에서 무엇을 생각했을까? “저 십자가에 달린 것이 나였다면?" 아마도 그는 몸서리치면서, 죽어가고 있는 예수를 지켜보았을 것이다.

이 사건은 그의 기억 속에 생생히 남아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오순절이 되기까지 예루살렘에 머물며 사태의 추이를 관망했다. 그러던 그는 오순절에 일단의 무리들이 모여 있는 것을 보았다. 호기심은 그로 하여금 사람들의 틈을 비집고 들어가 기웃거리도록 이끌었다. 그곳에서는 지난 날 정말 재수(?) 없게도 사형수의 십자가를 대신 지게 하였던, 그리고 십자가에 달려 죽은 자칭 '유대인의 왕, 예수'의 제자들이 비장한 어조로 설교를 하고 있었다.

사도행전 2장에 보면 오순절에 제자들의 설교를 들은 수많은 지역 사람들이 각기 그들의 방언으로 설교를 알아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 기록에도 구레네 출신들이 있었음을 알려주고 있다. 구레네 시몬은 사도 베드로의 연설을 들었다.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행 2:36) 베드로의 설교는 구레네 시몬의 폐부를 파고들었다. 구레네 시몬, 그는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가 바로 자신이 달려 죽었어야 했을 것이었음을 깨달았다.

죽음을 향해 가던 그, 영생을 알지 못하던 그는 예수의 죽음으로 생명을 건진 것이었다. 십자가에 달린 것은 예수였으나 그 예수와 함께 시몬의 몸도 십자가에 달린 것이었다. 파피아스(Papias, 약 130년경에 사망)에 의하면, 마가는 그의 복음을 로마에 있는 기독교인 공동체에 보냈다고 한다.

이 공동체에서 알렉산더와 루포(Alexander & Rufus)는 공동체의 일원이었는데 마가복음 15:21(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부터 와서 지나가는데 그들이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에 의하면 그들이 바로 구레네 시몬의 아들들이었다는 것이다. 즉, 구레네 시몬은 십자가 사건 후 회심하여 기독교인이 되었고 그의 아들들은 그 신앙을 받아들였던 것이다.

아버지의 경험을 수없이 들어왔던 알렉산더와 루포는 로마의 기독교 공동체에서 매우 잘 알려져 있고 중요한 인물이 되었다. 따라서 마가는 로마에 보낸 그의 편지에서 구레네 시몬을 소개하며 굳이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비'라고 설명했던 것이다. 또한 바울도 로마서 16장 13절에서 루포를 언급하며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고 말하고 있다.

한편 히폴리투스는 후일 루포가 테베 지역의 주교로 활동했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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