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최초로 히말라야 8000m급 14봉을 등반한 사람, 산이 거기 있어 간다고 하지 않고 오를 수 있으니 나는 오늘도 산을 오른다고 말했던 라인홀트 메스너가 고비 사막을 횡단한 적이 있습니다. “사막은 인간의 정신을 깨끗하게 정화시켜 줍니다. 사막의 텅 비어 있음이 나를 겸허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이상한 행복감이 찾아옵니다. 사막에서 왜 행복한 걸까요? 그 신비함이 나를 계속 걷게 합니다.”

채워져 있어서 완벽하고 행복한 경우가 분명 있지만, 반대로 비워 있음이 역시 행복이 된다는 것이 삶의 진리입니다. 저는 이 채움과 비움은 순차적인 것이며 상관관계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비움이 먼저이고 그 다음이 채움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비움이 당신이 가는 길이라고 하셨습니다. 당신을 따라 오려거든 먼저 비우고 오라고 하셨습니다. 가는 도중에는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마16:24).

오늘 우리의 삶은 단순하지 않고 점점 복잡해져 갑니다. 더 채우고, 더 쌓느라 그런 것 같습니다. 어떤 분은 시중의 거의 모든 SNS에 가입해서 새로운 글이 올라왔는지 수시로 확인하고, 자신의 새 글과 사진을 올리느라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부활절이 지나가고 있는 지금, 주님은 온 세상에 푸른 물감을 뿌리고 계십니다. 날마다 그 색이 짙어져 가고 생생해져 갑니다. 신록(新綠)이라고 부릅니다. 완전 새로운 초록색입니다. 참 아름다운 계절입니다. 주님은 다 비워내시더니, 휑뎅그렁하게 방치하나 싶었는데 이리도 온 세상을 아름다움과 생명으로 가득 채워가고 계십니다.

비움과 채우심을 절묘하게 보이시며 가르치고 계십니다. 내가 십자가 앞에서 비운다면 주님은 당신의 생명과 기쁨과 평안으로(요 14:27, 17:13)채워 주실 텐데, 우리는 무엇이 그리 못 미더운지 비우지 못합니다. 바울 사도가 배설물처럼 버렸던 것들을 너무 사랑하고 아끼는 것 같습니다. 더 나아가 그것들 때문에 갈등과 분열을 일으키고, 세상 법정에 송사하기까지 합니다. “머리가 버티려고 하는 한 다리는 견딜 수 있다. 나 자신의 경험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이다.”

25kg의 물동이를 짊어지고 막막한 정적, 한낮의 이글거리는 햇빛조차도 외로움이었던 사막을 걸으며 메스너가 깨달은 삶의 잠언입니다. 내 머리, 즉 정신을 버티게 하는 진리는 주님의 십자가, 그 비움의 교차로가 아닐까요? 저 신록은 또다시 변신할 겁니다. 얼마쯤 후에는요. 주님께서 그렇게 솜씨를 부리실 겁니다. 온통 천지를 붉고 노랗게 칠하시고, 행복한 열매들로 이 땅에 가득 채우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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