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악마에게는 죄인이 가장 맛있는 요리였다. 마침 성금요일에서 부활절 사이에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리스도께서도 죄인들과 함께 지옥문을 통해 음부에 내려가셨다. 악마는 그리스도를 삼켰다. 그리스도는 죄를 알지 못하는 유일한 분이었고 따라서 그 맛은 각별한 것이었다. 그러나 악마에게는 구역질이 날 만큼 역겨운 맛이었기에 도저히 참지 못하고 토해버릴 수밖에 없었다.”(루터의 설교·‘그리스도 음부에 내려가시다’에서)

▨… 루터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무슨 동화처럼 그려서 알기 쉽게 설명하려고 애쓰기도 했지만 부활의 영광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하나님’ 사건이 먼저라고 확실하게 못 박았었다. 십자가 없는 부활은 상상할 수도 없음을 분명히 했다. 그는 사도 바울의 말(고전 2:2)을 그대로 따라서, 자신도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 밖에는 알지 않겠다”고 선언했었다. 그가 “단 한 가지를 설교하라. 십자가의 지혜만을!(unum praedica: sapient iam crucis!)이라고 외친 것은 그의 ‘십자가의 신학’의 당연한 귀결이었다.

▨… 초대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은 박해 끝에 당하는 죽음까지도 영예로운 것으로 받아들였다고 유세비우스(Eusebius)는 기록하고 있다. “첫 번째 사람에게 선고가 내려지자 마자 이쪽저쪽에서 사람들이 재판관 앞으로 나와 자신도 그리스도인이라고 진술하였다. 그들은 여러 가지의 고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담담하게 최후의 사형선고를 받아들였다.” 저들은 사형선고의 순간에도 십자가의 주를 따를 것을 증언했다고 유세비우스는 적고 있다.

▨… 시대가 달라져서 이땅에서는 아무도 십자가의 고난을 강요하지 않기 때문일까. 오늘의 한국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적 의식구조에서는 부활은 막연한 소망의 대상일 뿐이다. 루터에게서처럼 부활이 십자가의 죽음, 또는 그리스도의 수난을 전제하는 것이라는 이해는 교리에서만 살아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있을까.

▨…한국교회 부활절 연합예배가 연세대 교정에서 열릴 예정이다. 연합예배 성사까지엔 우여곡절이 많았다는 후문이 돌았다. 그중에도 설교자 선택이 난제였다고 한다. 연합예배에서 설교하고자 하는 고명하신 목사님들은 많은데 부활절은 1년에 한 번뿐이니…. 주께선 왜 한 번만 십자가를 지고 죽으셔서 한국교회를 이런 ‘값싼 은혜’(본회퍼)에 주저앉게 하시는지, 그 이유를 아는 사람은 도대체 몇 명이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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