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지 939호(3월 15일자)를 본 대구의 어느 은퇴 장로님께서 짧은 글을 보내주셨다. “오늘 아침 애오개를 읽다가 문득 요즘 시대의 대세는 가톨릭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최근에 퇴직한 후배들 중에는 성당행이 붐을 이루고 있음을 보기 때문입니다. 저들에게 본이 되지 못한 제 책임을 피할 마음은 없습니다.” 이 글의 주인공 장로님은 평생을 교직에 몸담으셨었다.

▨… 벌써 몇 번째인가? 일간지들이 대문짝 만하게 프란치스코 교황의 사진을 실었다. 교황이 무릎을 꿇고 일반 사제 앞에서 ‘고해성사’를 하는 사진이었다. 사제 앞에서 죄를 고백하는 행위로 고해성사를 이해하는 사람들은 교황이 무슨 죄를 고백했을까 하고 엉뚱한 것을 궁금해하면서 교황이 일반 사제 앞에서 무릎을 꿇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신기해하였다. “모든 사람은 죄인입니다”라는 말 속에 자신을 포함시킨 교황의 언동은 차라리 신선했다. 그것이 그 사진을 본 사람들의 느낌이었다.

▨… 프로테스탄트(개신교도)들은 ‘교황무오설’에 지나칠 만큼 익숙해져 있다. 모든 교황들은 무오설로 자기를 감싸고 있다고 세뇌당해 온 것이다. 교황 중에는 세상 끝날까지 잘못이나 실수를 절대로 하지 않을 것이며 할 수도 없다고 못박았던 11세기의 그레고리 7세 같은 교황도 있기는 있었다. 그러나 가톨릭 대변혁의 횃불을 든 요한 23세의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교황무오설이 더는 가톨릭의 관심사가 되지 않았음은 분명하다.

▨… 물론 예외는 있다. 교황이 엑스카테드라(Excathedra·교황이 공식적으로 전 세계 가톨릭 신도들에게 가르침을 주는 자리)에서 발표하는 내용에는 오류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것은 교황무오설과는 다른 내용이다. 루터(M. Luther)가 무오설로 무장한 율리우스 2세나 레오 10세를 꾸짖었다고 해서 오늘의 가톨릭에도 그런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개신교의 무지요 오만으로 지적되어야 한다.

▨… “나는 로마 교황청 곧 귀하의 직위를 경멸했습니다. 로마 교황청은 바벨론이나 소돔보다 더 부패하였고 불경건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것은 루터가 레오 10세에게 보낸 공개장의 한 부분이다. 자신의 개혁으로 태어난 프로테스탄트들의 오늘날 타락상에 대해 도대체 루터는 어떤 공개장을 보낼지 생각해 보았는가. 무릎 꿇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사진이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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