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를 타다가 한 건물의 광고판에 걸린 허영자님의 ‘행복’이란 시를 대하고 마음이 고요해진다. 행복을 찾아가는 시인의 마음이 소담하게 묻어나있기 때문이다. 

“눈이랑 손이랑/ 깨끗이 씻고/ 자알 찾아보면 있을 거야.
깜짝 놀랄 만큼/ 신바람 나는 일이/ 어딘가 어딘가에 꼭 있을 거야.”

글쎄 행복이란 녀석이 눈 씻고 손 씻고 잘 찾아보면 있을까? 깜짝 놀랄 만큼 신바람 나는 일이 어딘가에 있긴 있을까? 건강을 찾으면 행복해진다고 건강에목숨을 거는 분들이 있다. 또 무엇을 먹으면, 무엇을 소유하면 또는 무엇을 성취하면 약간의 행복이 주어진다고 믿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지만 그것이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 줄까?

도대체 행복이란 무엇을 통해서 찾아질까? 정작 행복의 비결은 무엇이란 말인가? 믿음의 사람들은 행복에 오해가 있다. 믿음을 경주하면 혹 하나님께서 숨겨둔 선물처럼 행복을 어느 순간 받는 것 아닐까 생각한다. 열심히 사역하면 구원의 문제가 완성되고 칭찬이 자자해지며, 나도 모르게 으쓱거리는 맘에 행복감이 밀려온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최근 필자는 영성훈련을 통하여 자신을 용광로 속에 집어넣는 작업, 그러니까 나를 통하여 일하실 하나님의 뜻을 찾아 나섰다. 바로 행복을 찾아다니는 영성훈련의 조각배를 띄우는 일이다. 지난해 11월 초엔 다일영성수련원에 부부가 입소하여 훈련하고 분노를 다스리는 작업을 하였다.

지난달 1월 둘째 주엔 4박5일간 소록도 한센인 사역지에 자녀와 함께 다녀왔다. 그리고 2월 첫주에는 3박4일간 죠이어스 글로리(ILP가 주관한 목회자TD)에서 훈련을 하였다. 현재는 예수전도단(YWAM, BeDTS)에 입학하여 7개월간의 영성인격을 훈련 중이다. 굳이 이유를 찾자면 인생의 후반전을 그대로 마감할 것인가? 아니면 짜릿한 역전승을 맛볼 것인가? 무엇이 나를 살려낼 것인지를 찾아 나선 것이다.

세상에는 교회 도전 세력이 몰려온다. 그것은 정도가 심하고 격랑하는 쓰나미여서 교회들을 삼킬 태세이다. 여기저기서 목회하기 어렵다는 말들이 들려온다. 어떻게 목회적인 격랑을 잠재울 것인가? 뽀족한 방법이 없다는 말인가?

필자는 오래전부터 독서목회를 제창해 왔다. 그러던 중 감사라는 명제가 세상에서 우후죽순처럼 돋아나기 시작했음을 본다. 흡사 만병통치약 같은 모순을 가진 양날의 칼처럼 말이다. 하지만 지난해 말부터 접한 감사모임과 한 권의 감사 책에서 목회적 소망과 행복의 눈을 보았다.

행복해서 감사한 게 아니라 감사하면 행복해진다. 논리는 간단하다. ‘감사하면 행복해진다니 참말인가?’ 대답은 ‘그렇다’이다. 성결교회 동역자들에게 감사를 권한다. ‘감사’라는 말은 은혜와 아주 밀접하다. 감사(gratitude)와 은혜(grace)의 어원이 같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라틴어로는 ‘gratus’이다. 은혜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반면 감사는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것이다. 인간의 행위이다. 감사가 있어야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 오고가는 놀라운 쌍방향 소통이 완성된다.

신앙인은 놀라운 은혜를 사모하면서도 감사는 하지 않으려 한다. 은혜는 거저 받으려 하면서 감사의 수고는 조금도 하려 하지 않는다. 내가 할 일과 책임은 감당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려 한단 말인가? 은혜? 필요하다면 하나님이 허락하신다. 그러나 은혜의 자리로 나아가는 수고쯤은 내가 해야 하는 것 아닌가? 값진 은혜를 싸구려로 취급한다든지, 고귀한 은혜를 값싸게 만들어선 안 된다. 그 길은 감사를 찾는 것이다. 너무나 쉬운 주제요 흔해 빠진 말이기에 자칫 소홀히 하기 쉬운 말이지만, 현대인들에게 진정한 감사가 있는가? 감사라는 말은 입에 달고 살아도 진정한 감사는 잊은 지 오랜 듯하다.

절박한 시점에 나는 감사라고 하는 주제를 붙들게 되었다. 감사가 주는 힘은 컸다. 감사는 나를 화마(火魔)에서 건져낸 소방수, 조난당한 험산준령으로 다가온 구조대와 같다고나 할까? 대한민국이 왜 자살제국이 되고 있는가? 특히 청년과 노인 자살이 왜 그렇게 많은가. 경제성장 뒤에 찾아온 어두운 모습이지만 다른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나의 시각에서 보건대, ‘감사’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나 또한 불의한 유혹에 시달리고 사악한 음성에 넘어질 뻔한 적이 몇 번인지 모른다. 과연 그 삶에 감사가 있다면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차제에 교회마다 감사를 되살리는 운동을 했으면 한다. 놀라운 것을 경험할 것이다.

저작권자 © 한국성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