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을 지내며
사순절이 시작됐습니다. 골고다의 십자가 처형과 삼일 후 극적인 부활에서 절정에 이르는 40일간의 거룩한 여정입니다. 젊고 건강한 이들에게는 하루하루가 수도꼭지에서 무한정 쏟아지는 물처럼 흔하고 평범한 것 같지만 예수님에게 사순절은 이 땅의 마지막 시간이었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동안 그분은 자신에게 주어진 하늘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숨가쁜 순간들을 보냈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할 때 그의 땀이 피가 되었다는 성경의 기록은 그분이 살았던 마지막 시간의 농도를 짐작하게 합니다. 예수께서 골고다에 이르기까지의 숨가쁜 여정 속에는 여러 사건이 뒤섞여 있었습니다. 그 여정에서 드러난 그분의 행적은 저의 가슴을 계속 두드리며 그를 따르는 삶의 의미를 근원적으로 되묻게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자신에게 남은 마지막 시간들을 사랑과 용서를 위해 온전히 사용하셨기 때문입니다. 제자들과 마지막 식사를 함께 하고 제자들의 발을 손수 닦고 세상을 위해 십자가를 홀로 지며 자신을 저주하는 자들을 용서하고 강도에게 낙원을 약속하고 어머니를 제자에게 부탁하는 모습에서 우리는 죽음의 시간을 사랑의 영원으로 역전시키는 하늘의 기적을 봅니다.

사람을 이해하고 용서하고 사랑하는 것이 참으로 어려운 일임을 새삼 절감하며 한 주간을 보냈습니다. 더는 덮어주고 기다리고 용납할 수 없다는 생각에 마음이 진정되지 않아 많이 고생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주님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이해할 수 없을 때 기도하라.” “용서할 수 없을 때 축복하라.” “사랑할 수 없을 때 십자가를 바라보라”는 말씀을 마음으로 들었습니다. 마침내 성령께서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셨습니다.  
“주님 이 사순절에 저도 주님처럼 사랑하게 하옵소서. 주님처럼 울게 하옵소서. 주님처럼….”

중세 서구에서는 사순절 기간에 육식을 금했습니다. 육식을 주식으로 하는 그들이 선택한 금욕의 한 방편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순절 기간에 소시지를 먹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미신으로 오염되고 권력과 재물로 타락한 중세 가톨릭교회를 비판하던 젊은이들이 저항의 표현으로 소시지를 먹은 것입니다. 그것은 사회적 파장을 크게 불러왔고 그에 따른 극심한 비판과 박해를 받았습니다. 그 젊은이들이 바로 ‘재세례파 운동’의 창시자들인 그레벨과 만츠 등이었습니다. 

사순절의 본질을 생각하며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 이전에 벌어진 사건들 중 결정적인 사건은 예수님의 성전청결 사건입니다.
예루살렘 사람들의 열광적인 환호 속에 입성하신 예수님은 곧바로 예루살렘 성전으로 달려가 그곳에서 장사하는 상인들의 상을 뒤엎고 그들을 거칠게 쫓아냈습니다. ‘만민의 기도하는 집’을 ‘강도의 소굴’로 변질시켰다고 정죄하시면서 예수님께서 분노하셨습니다. 아마 이것이 예수님의 분노에 대한 성경의 유일한 기록일 것입니다. 무엇이 예수님을 그렇게 화나게 했을까요?

사순절에 고의적으로 소시지를 먹었던 재세례파 젊은이들과 성전을 청결케 하신 예수님의 분노는 서로 연결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두 사례 모두 종교의 본질이 형식에 의해 왜곡되고 부패되는 것을 참을 수 없어 강하게 저항한 기록입니다. 뒤로 온갖 더럽고 추잡한 짓을 다하면서 소시지 한 조각 먹지 않는 것으로 자신들의 부패한 신앙과 타락한 종교를 감추려 했던 그들의 위선을 조롱하고 부패를 공격했습니다.

신앙을 돈벌이 수단으로 삼고 하나님의 성전을 장바닥으로 추락시키며 하나님을 맘몬으로 둔갑시켜 변질된 것이 유대 전통 종교였습니다. 주님은 부패와 타락으로 오염된 그 거대한 예루살렘 성전을 향해 자신의 육신을 던지셨습니다. 그는 자신의 육신을 깨뜨려 그 성전을 허물고 그 자리에 자신의 몸으로 교회를 다시 세우셨습니다.

이번 사순절이 매년 반복되는 종교적 의례로 머물지 않고, 우리가 진정한 교회로 거듭나는 축복의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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