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풍언 목사님!
시체가 된 저를 업으시고 세브란스병원으로 달려가신 것을 기억하시나요? 222호실에서 40일간 J. B 크라우스 목사님의 사모님께서 저를 간호해 주셨을 뿐 아니라 치료비 전액을, 그리고 더 치료를 위해 학술용으로 병원에 의탁하게 하신 일을 다시 감사드립니다. 더는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집으로 돌아왔지만 이것이 치유 목회의 시작이 될 줄은 전혀 생각지 못했습니다. 폐병, 결핵성 늑막염, 기관지 파열임에도 불구하고, 주께서 고치셨습니다!!

누구나 거쳐 온 인생살이 중 하나였지만 지나친 가난과 열심은 육체에 한계가 왔고 지병으로까지 커지게 되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큰 슬픔과 좌절이었습니다.

육체의 질병
제 사역의 현장은 갈릴리가 아니라 광야였습니다. 오히려 목회 현장은 풀 한 포기 잡히지 않고 막막한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사역의 방향이 달라졌습니다. ‘주님을 만나야지’라는 마음으로 발버둥쳤지만 이것도 한계였습니다. 병원에서 달고 나온 링거병은 저를 낙망하게 했고 가슴과 옆구리에 구멍을 내고 늑막염 불순물을 받아내는 아픔과 무거운 발걸음은 기도도 인생도 포기하게 했습니다. 오히려 죽음을 기다리는 것이 편했습니다.

긴 투병에 모든 것이 끝이었습니다. 성경의 위인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일들이지만 한마디로 비참의 연속이었습니다. 단절의 현장은 엄청난 어둠으로 몰아치는 절망이요, 저주였습니다. 주님의 고난과 저의 고난이 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은 시간이 지난 뒤에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치유의 시작
침상에 누운 지 상당한 시간이 지나 하얗게 굳어져 가는 제 얼굴에 뜨거운 물이 가득히 고여 있었습니다. 어머니의 눈물이었습니다. “아버지여 아들을 살려 주시고 늙은 어미를 데려가 주소서”라는 어머니의 기도는 제 영혼에 봄바람 같은 생기를 불어넣었습니다. “살겠구나”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얼마 후 어머니는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응어리진 눈물과 마음을 안고 기도원으로 들어갔습니다. 깊은 밤 골짜기에 물소리가 들리고, 기도소리가 뜸뜸이 들리는 새벽 미명, 별들이 촘촘히 빛나는 그곳에 한 별이 떨어져 내 가슴에 섬광같이 떨어졌습니다. 그곳에서 “주께서 네 병을 치료하셨느니라”라는 주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이 말을 듣자마자 바로 병원에 내려갔습니다. 치료를 해 주셨던 의사선생님이 “이제 나았습니다”라는 말로 완치를 알려줬습니다.

링거병에 꽂았던 주삿바늘을 모두 제거한 것만으로도 날아갈 것 같았습니다. 그럼에도 뚫린 옆구리에서 나오는 물은 감당할 수가 없었으며, 그 냄새도 보통이 아니었습니다. 숨도, 소리도 크게 할 수 없는 새벽기도의 시간마다 긴장되었지만 어느 날 주님이 찾아오셨습니다. 너무나 순간적이고 갑작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그분은 손으로 저를 만져주셨습니다.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주여 이 가슴도 만져주세요”라고 외쳤습니다. 그 뒤로 안수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으며, 부흥사역이 시작되었습니다. 오늘 새벽에도 신유의 안수를 하고 왔습니다.

이 지면을 통해 제가 병들고 나그네 되었을 때 도와주신 분들께 다시 감사드립니다. 차풍언 목사님, J. B 크라우스 목사님과 사모님, 황대식 목사님, 장문원 목사님, 박병무 목사님, 그 외 많은 분들, 이름을 밝히지 않은 분들께 더 감사를 드립니다. 특히 J. B 크라우스 선교사님 내외분께서 지난해 12월 명예 선교학박사 학위를 미주 성결대학교에서 받게 된 것을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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