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 8:31∼39)

“만약에 내일 예수님이 오신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어떤 이는 지금부터라도 정신을 바짝 차리고 살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떤 이는 지금까지 살아온 것처럼 살겠다고 합니다. 이 둘 중에 누가 주님을 맞이할 수 있을까요?

평소에 정신없이 살다가 주님 오신다니까 정신을 차리고 살겠다는 전자입니까? 아니면 늘 깨어 있기에 내일 주님이 오셔도 별로 달라질 것이 없다는 후자입니까?

“만약에 20대로 돌아간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어떤 이는 제대로 한번 살아보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떤 이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합니다. 예상치 못한 대답에 그 이유를 물으면 다시 산다 해도 지금처럼 살기가 결코 쉽지 않을 것 같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 둘 중에 누가 행복한 사람일까요? 지나간 과거가 후회스러워 지우고 다시 새롭게 살아보겠다는 전자입니까? 아니면 지나간 과거가 아름답기에 다시 산다 해도 그렇게 살 자신이 없다는 후자입니까?

“만약에 하나님이 우리 편이 되어 우리를 위해 일하신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습니까?”(롬 8:31) 어떤 이는 내가 하나님 편이 되어야지 어떻게 하나님을 내 편이 되게 하느냐고 합니다. 그런데 어떤 이는 지금 하나님이 내 편이 되셔서 나를 위해 일해주시고, 나를 위해 싸워 주시고 있기 때문에 늘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합니다.

이 둘 중에 누가 믿음이 좋은 사람일까요?
자신이 하나님 편이 되어 살겠다는 전자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이 자기 편이 되어 일하시기 때문에 승리하는 삶을 살고 있다는 후자입니까?

어떻게 보면 전자가 믿음이 좋아 보이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은 내가 아닌 하나님께서 이끌어 가 주시는 생활입니다. 하나님이 내 편이 되셔서 나를 위해 일해 주시고, 나를 위해 싸워 주시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믿고 경험하며 고백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훨씬 믿음이 좋은 사람이라고 봅니다.

우리는 더 많은 ‘만약에’라는 가정의 질문을 자신에게 던져야 합니다.

“만약에 예수님이 나를 위해 기도하고 계신다면….”(롬 8:34)
“만약에 성령님이 나의 삶을 인도하고 계신다면….”(갈 5:18)
“만약에 하나님이 내가 구하는 것을 다 받게 해 주신다면….”(마 21:21)

그리고 이 ‘만약에’가 가정이 아니라 우리의 삶의 실재가 되어야 합니다.

“오 삼위일체 하나님! 당신이 존재하시고, 당신이 가지고 계시며, 당신이 원하시는 모든 것이 다 나를 위한 것임을 기뻐합니다. 날마다 당신을 경험하게 하시고, 당신께 영광 돌려드리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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