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갑오년 새해가 시작되었다. 새로운 각오와 다짐을 했건만 벌써 작심삼일이 된 계획이 있다. 필자에게 어김없이 지켜지지 않는 계획 중 하나는 연중 성경읽기표에 동그라미 그리기이다.
이스라엘에 살면서 만난 유대인들은 이른 아침 흔들리는 출근 버스에서도 성경을 읽고 있었다. 유대인들은 한 해 동안 모세 오경을 읽어야만 하기 때문에 매일 읽어야 하는 분량이 정해져 있고 이를 실천하고 있다. 이 관습은 오래전부터 행해졌던 것으로 부모는 아이에게 이 관습이 습관처럼 몸에 배도록 가르쳐야만 한다. 말씀을 나누고 토론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어디에서나 하나님의 말씀을 새기고 살아가야만 한다.
이러한 관습은 신명기 6장 4~9절에서 기인했다. 그들은 이 말씀을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해야 한다. 더불어 이 말씀을 손목에 매어 기호로 삼고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하여야만 했다.
유대인 회당과 가옥에서 흔하게 발견되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이 말씀을 기억하기 위한 도구들이다. 가옥의 문설주마다 메주자라 불리는 작고 긴 상자가 달려 있다. 기도를 준비하고 있는 이들은 트필린이라 부르는 검은 가죽상자를 미간에 두고 팔목에는 가죽끈으로 휘감고 있다. 메주자와 트필린 안에는 양피지에 기록된 출애굽기 13장 1~10절, 12장 11~16절과 신명기 6장 4~9절, 11장 13~20절의 말씀이 들어 있다.
마태복음 23장 1~36절은 예수께서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가식적인 신앙의 모습을 크게 꾸짖으시는 유명한 기사이다. 이 기사 속에서 예수는 그들이 사람들에게 자신의 신앙심이 얼마나 깊은지를 보이기 위해 경문 띠를 넓게 하며 옷술을 길게 하였다고 꾸짖으셨다. 이 경문의 띠가 트필린이다.
구약시대의 트필린의 예는 아직까지 발견된 바 없다. 그러나 에세네 학파가 거주했다고 생각되는 쿰란에서 신약시대 전후에 사용된 트필린이 발견되었다. 이곳에서는 작고 납작한 검은 가죽상자들이 발견되었는데 상자의 크기는 길이 3.2∼1.3cm, 넓이 2.6∼1cm 로서 다양했다.
상자는 4개의 볼록한 부분들이 튀어나오도록 제작되어 있었으며 상자를 열자 안에는 돌돌 말려 묶어 놓은 양피지가 각각 끼워져 있었다. 이 양피지는 길이가 겨우 평균 5∼3cm 밖에 되지 않았고 돋보기로 보아야만 간신히 그 글씨를 알아볼 수 있다.
양피지에 쓰인 성경구절은 현대의 트필린에 쓰인 것과 같은 구절들이다. 쿰란의 사람들은 이 트필린을 미간에 붙이고 예루살렘을 향해 매일 기도하였을 것이다. 동시대 성전에서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 역시 같은 트필린으로 성전에서 기도하였을 것이다.
예루살렘에서는 아마도 소유자의 편의에 따라 다양한 크기의 제품이 만들어졌을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서기관과 바리새인 중에는 트필린 착용의 목적보다는 그 크기를 통해 지위와 명예를 보여주는데 급급한 이들이 있었던 것을 상상해 볼 수 있다.
혹 우리는 서기관이나 바리새인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목사라는 직책을 달고 성경을 끼고 다니면서 “이 말씀을 알고 사랑하며 잘 지키고 있습니다”라고 겉으로만 보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를 돌아봐야 할 것이다. 새해 새로운 각오는 그렇다. “오직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는 명령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어디서나 이 말씀을 강론하며 내 생활 속에서 함께하도록 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