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부분의 해외여행은 그 목적이 회의에 있든지, 세미나에 있든지 참석자들의 휴양을 고려해서 일정을 계획한다. 따라서 어느 정도까지는 관광을 위한 시간배정이 반드시 고려된다. 그러나 지난 연말에 있었던 필리핀 긴급구호단의 반타얀 섬 방문은 3박4일의 강행군이었다. 교통편이 여의치 못했다는 재해 현장의 상황 탓도 있었지만, 방문 목적 자체가 긴급 구호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 고 정연성 부총회장은 건강상태가 양호한 편이 아니었음을 감지하면서도 그 강행군에 자원하였다. 자신이 우리 교단의 긴급 구호단장이라는 직책을 맡고 있었고 언제나 맡은 일에는 최선을 다한다는 신념으로 살아 왔었으므로…. 그는 현지 이재민들에게 약속을 남겼다. “지금 스무 채의 새 보금자리가 완성되었지만 한국 성결교회가 꼭 일백 채의 집을 짓도록 기도하며 돕겠다”라고.

▨… 그는 약속을 남겨둔 채 현지에서 심장마비로 숨을 거두었다. 몸이 좋지 않은 사람에게 왜, 필리핀 재해 현장 방문과 같은 강행군을 권면하였느냐고 꼬투리를 잡는 것은 그의 죽음을 기리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를 못한다. 오히려 그의 헌신과 봉사를 모독하는 일이 될 뿐이다. 그는 하나님의 일과 교회를 사랑하여 자신의 책무를 감당하려했는데 그 노력에 대하여 왈가왈부하는 것은 믿음의 동지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

▨… 존 웨슬리는 “벌거벗은 채 예수 그리스도께서 태어나신 베들레헴까지, 그를 찾아 따라가기 위하여 그가 채찍질 당하셨던 관정에까지, 그가 십자가에서 죽으셨던 갈보리까지 좇기 위하여 전체를 포기하는 것, 자아로부터 전체를 벗어버리는 것은 크나큰 자비여서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믿음 없이는 허락되지 않는다”고 말했었다. 고 정연성 부총회장의 죽음은 갈보리까지 벗은 채로 좇으려는 그의 믿음의 결과였음을 부정해서는 안된다.

▨… 이제 우리 교단은 그의 약속이 우리의 약속이 되었음을 자각해야 한다. 필리핀의 반타얀에 일백 채의 새 보금자리를 성결교회의 이름으로 완공하고 그곳에서 정연성이라는 이름이 살아나게 해야 한다.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려고 생명을 바친 이를 교단이 기리지 않는다면 그 교단은 희망이 없다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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