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어김없이 온 나라의 젊은이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온 것 같은 느낌이 들게 하던 시절이 있었다. christmas라는 영어식 표기를 멋부려 헬라어와 영어를 조합하여 Xmas로 도안한 것을 ‘엑스마스’로 읽으면서도 젊은이들은 성탄의 통금해제를 만끽하려고만 들었었다. 저들에게 성탄은 ‘조용한 밤, 거룩한 밤’이 아니라 ‘시끄러운 밤, 난장판이어도 좋은 밤’일 뿐이었다.

▨… 상점마다 크리스마스 트리가 휘황찬란했었고 거리에는 크리스마스 캐럴이 흘러 넘쳤었다. 기독교 문화전통에 익숙한 백인들이 보면 한국인들이 언제부터 모두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며 한국의 문화는 또 언제부터 기독교 중심이 되었느냐고 고개를 갸웃거릴 만한 사태였었다. 그 꼴을 보다 못한 교회들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제발, 성탄이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 되게 해주세요라고.

▨… 언제부터인가, 한국의 성탄절은 고요한 밤이 되었다. 크리스마스 트리의 불빛도 사그라지고 캐럴은 아예 들리지도 않는다. 어쩌다 볼 수 있는 크리스마스 트리나 산타클로스의 그림, 구세군의 빨간 냄비가 성탄의 계절임을 알려 주기는 하지만 캐럴이 사라져버린 성탄의 알림판들은 차라리 휑뎅그렁하다는 느낌마저 갖게 만든다.

▨… 그 많던 캐럴이 일시에 사라져버린 이유는 무엇인가? 캐럴의 저작권료를 비롯해, 실연가, 음반제작자에게도 일정한 범위의 권리를 인정해 사용료를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국교회는 많은 교회와 신도들을 숫자로는 자랑하지만 저작권료와 사용료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캐럴 하나도 번듯하게 만들어 내지 못했다. 그만큼 한국문화 속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 선교는 문화의 변혁을 전제한다. 교회 건물을 몇 개나 짓느냐가 선교의 목표일 수는 없다. 그보다는 사람들의 문화(삶)가 과연 그리스도인의 문화로 바뀌고 있느냐를 물어야 한다. 이점에서 니버(H.R.Niebuhr)는 문화의 변혁자로서의 그리스도를 강조했었다. 성탄의 기쁨을  거리마다 넘치게 할 한국인의 캐럴 하나 만들어내지 못한 한국교회가 한국 문화에 과연 뿌리를 내리고 있는지를 물어야 하지 않겠는가. 문화와 단절된 교회는 허상일 수밖에 없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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