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봉일, 그의 이름을 기억하는 성결인들은 대체 몇 명쯤이나 될까. 성결교회의 목사들 중에서도 최봉일이 우리 교단의 목사이며 선교사였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대체 몇 명쯤이나 될까. 그가 중국에서 탈북자들의 한국행을 돕다가 ‘불법밀입국조직’을 결성한 혐의로 중국 공안에 체포되어 2002년 4월부터 2년 5개월이나 복역했음을 아는 성결교회의 목회자들은 대체 몇 명이나 될까.

▨… 최봉일, 그는 성결교회의 목사이면서도 성결교회가 일반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길을 온몸을 던져 부딪쳐간 사람이다. 탈북자의 한국행 주선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으려 하고 그것을 선교의 일환으로 이해하려는 고집은 인정하기는 싫지만 성결교회적인 발상이나 통념은 아니다. 그 결과였다면 너무 가혹할까. 그는 중국 감옥에 갇혀 있던 2년 5개월 동안 자신의 모교단인 성결교회에서는 자연스럽게(?) 거의 잊혀져 있었다.

▨… 그래도 그의 죽음만은 성결교회적이었다고 말한다면, 너무 뻔뻔한가. 그는 중국 감옥을 겪고 난 후에도 메콩강 유역에서 탈북자들을 돕는 일을 감당했다. 그것이 소명이고 천직인 것처럼…. 그러다가 3년 전 담도암 판정을 받았다. 그 판정도 그를 메콩강에서 물러나게 하지는 못했다. 그 최봉일이 지난 11월 귀국했다. 큰딸의 결혼식 참석을 위해서였다.

▨… 그를 아는 사람들이 그의 메콩강 복귀를 말렸다. 악화된 병세 때문이었다. 가더라도 치료라도 조금 받고 가라고 붙들었다. 그런 주위 사람들에게 그가 들려준 말은, “선교사는 선교지에서 죽어야 한다”였다. 그는 돌아갔고 보름 만에 그의 부음은 전해졌다. 그의 소천은 자신을 중국 감옥에 버려둔 채 잊어버린 교단을, 성결인을 향해 ‘선지자는 예루살렘 밖에서는 죽는 법이 없음’을 확인시켜주었다.

▨… 최봉일, 이제야 그가 성결교회적인 목사, 선교사인지를 묻는 것은 부질없는 짓인지도 모른다. 그가 떠나버린 지금에서야 그런 질문을 던지는 것은 객쩍은 짓일 수도 있다. 그러나 선지자는 예루살렘 밖에서는 죽는 법이 없음이 우리의 내릴 수 없는 깃발이라면 우리는 물어야 한다. 어리석게까지 보이는 그의 삶이 성결교회적인지, 중국 감옥의 그를 잊어버린 우리가 성결교회적인지를…. 그의 부음에 부끄러워지는 마음을 어쩔 수 없어 내뱉는 넋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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