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봉사에도 헌신적

도한기 장로는 교회와 회사, 가족을 위해서 변함없이 기도에 힘썼으며 그의 간절한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하심을 체험하였다. 한때 도 장로에게 큰 시련이 닥쳐왔을 때가 있었다. 어떤 어려움이나 시련에 부딪힐 때 하나님께서 위로해주시고 피할 길을 열어주셨음을 그의 자녀들도 기억하고 있다. 그는 예수님을 무척 사랑했기에 기도 끝에는 언제나 “우리 모두 주님을 사랑합니다. 아멘”이라고 고백했다.

그는 또한 교회를 향한 사랑이 남달랐다. 그는 매주 토요일 강단에 꽃을 꽂아놓았다. 은퇴 후에도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도 교회주일 강단 꽃 장식에 어울리지 않는 이름 모를 한 송이 꽃을 남몰래 꽂아놓았다.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꽃 장식을 할 수 없을 때에도 주님에 대한 사랑을 남몰래 표현한 것이었다. 그가 꽃을 꽂아놓는 것을 어쩌다 알게 된 목사에 의해 교인들도 알게 되었다.

도 장로가 섬겨온 안동성결교회는 1953년 10월 20일 십자군전도대의 천세광 목사와 이성봉 목사가 창립했다. 안동성결교회는 천막교회로 시작했는데 이성봉 목사가 부흥집회를 인도하여 대성황을 이루었다. 도한기 장로는 안동성결교회 2대 담임 황신행 목사, 3대 고대작 목사, 4대 천대성 목사, 5대 이우철 목사, 6대 임기택 목사, 7대 지성천 목사의 목회 사역에 절대 순종의 정신으로 협력하였기에 목회자들에게 큰 힘이 되었다. 때로는 교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 시련이 있어도 신앙과 사명감으로 이를 극복하고 교회부흥을 위해 적극적으로 보좌하고 협력했다.

이우철 목사가 5대 담임으로 부임하여 교회가 크게 부흥되기 시작했다. 신자가 증가하자 예배당 공간이 비좁아 많은 신자를 수용하기 어려워 교회 신축을 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 되었다. 교회당 신축을 진행할 당시 도한기 장로가 교회재정을 맡았다. 교회당 건축에 온 교인이 정성스러운 건축헌금으로 참여했지만, 크게 부족했다.

당시 3700여만 원의 건축비 가운데 도한기 장로가 3분의 2 정도를 봉헌하여 198평 대지에 건축면적 90평, 2층 현대식으로 교회당을 신축했다. 도 장로는 1974년 5월 7일, 제29회 성결교단총회에서 성전건축부문 총회장 공로패를 받았다.

1985년에는 안동성결교회에서 안동교회선교회를 조직하여 도한기 장로가 초대 회장에 선임되었다. 안동성결교회선교회는 서지동 교회 등 12곳의 약한 교회를 지원했다. 그리고 안동성결교회가 해외선교위원회 정회원에 가입하고 해외선교를 시작하고 아프리카 케냐에 선교사를 지원했다.

도한기 장로는 안동교회뿐만 아니라 지방과 총회와 지역사회로 봉사가 크게 확대되었다. 1981년 3월 경북지방회 부회장에 피선되어 경북지방회의 사역을 위해 봉사했다. 그해 7월에는 서울신학대학 후원회 부회계로 피선되어 서울신학대학 후원회의 확장과 발전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헌신했다.

1982년에는 경북지방회의 부회장에 연임되어 계속해서 경북지방회의 부흥발전을 위해 봉사했다. 1983년 5월에 교단총회 감사를 맡았으며 1989년 5월 제44회 교단총회 부회계로 피선되었다. 1990년 4월 제45회 총회 회계로 피선되어 교단총회 회계의 소임을 충실하게 감당했다. 1986년 서울신학대학 이사로 피선되어 서울신학대학교 운영에 깊이 관여하여 학교 발전에 기여했다. 1991년 한국성결신문사의 운영위원회 부위원장에 피선되어 한국성결신문사의 운영을 위해서 물심양면으로 봉사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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