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4:23~24, 출 20:24)

성경을 보면 예배(제사)에 성공한 사람은 신앙에 성공하고 신앙에 성공한 사람은 인생에 성공합니다. 반대로 예배(제사)에 실패한 사람은 신앙에 실패하고 신앙에 실패하면 인생에 실패합니다.

그 예로 사울은 이스라엘 초대 왕으로 멋지게 출발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실패했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하고 제사하는 일에 실패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작고 초라한 목동에서 택함을 받지만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귀중히 여겼던 다윗왕은 하나님께서 축복하셨습니다. 다윗이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소중히 여겼다는 것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시편을 지어 노래하거나 하나님의 성전을 사모하는 간절한 마음의 표현, 하나님을 위한 성전 건축을 위한 준비 등 여러 부분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20세기 최고의 신학자 카를 바르트는 예배의 중요성에 대하여 “예배는 가장 중요한 것이요. 가장 긴급한 것이요. 또 가장 영광스러운 일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배는 성도의 삶에 있어서 최고로 가치 있는 일입니다. ‘하나님께 최상의 가치를 돌리는 것’(to ascribe Him supreme worth)이 예배라는 말이 가진 의미입니다.

왜 우리 기독교인의 신앙생활에서 예배가 가장 소중하며 하나님은 왜 참되게 예배하는 자를 찾으십니까? 여기에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예배 때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와 백성들을 만나 교제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른 피조물과 달리 사람만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드셨고 그 속에 하나님의 생기, 즉 하나님의 영을 불어 넣으셨습니다. 육신은 흙으로 빚어 만드셨으나 우리의 영혼은 만드신 게 아니라 하나님의 영, 하나님의 생기를 불어넣어 우리를 하나님의 분신(分身)이며 하나님의 자녀로 삼(낳)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피조물이 아닌 가족으로, 자녀로 사랑하시기에 늘 만나기를 원하시며, 같이 있으며, 사랑의 교제를 나누시고, 하나님을 높여 경배하고 찬양하는 것을 좋아하시고 흠향하십니다. 그러므로 예배란 어떤 다른 이유보다 하나님과 그의 자녀, 그의 백성 간에 만나 관계를 누리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나님과의 공식적인 만남의 시간이며 장소인 예배를 소중히 여기시며 참된 예배자를 찾으시는 것입니다.

둘째, 예배를 통해 그의 자녀, 그의 백성들에게 복 주시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 20장 24절에 하나님께서 “내게 토단을 쌓고 그 위에 네 양과 소로 네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라 내가 내 이름을 기념하게 하는 모든 곳에서 네게 임하여 복을 주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은 복을 누린 사람들을 보면 한결같이 예배 중에 하나님께서 찾으신 사람들입니다. 아브라함, 야곱, 모세, 이사야, 다니엘 등 하나님을 만난 사람마다 그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과 동행과 형통케 하심을 누리며 쓰임받는 삶을 누렸습니다.

오늘 본문의 전제가 되는 수가성 여인도 다섯 남편이나 가졌던 여인이었습니다만 구세주였던 예수님이 그를 만나주신 것은 그 여인의 숨어 있는 이면, 즉 예배에 절실한 관심(4:20, 25) 때문이었습니다. 주야로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며 하나님을 섬기며 예배드렸던 시므온도 안나도 육신을 입고 이땅에 오신 하나님이신 아기 예수님을 만나 뵙는 엄청난 영광과 축복을 받았습니다.

삶의 성공은 신앙의 성공에서 오고 신앙의 성공은 예배의 성공, 하나님의 찾음에서 시작됩니다.
“주께 와 엎드려 경배드립니다. 주 계신 곳엔 기쁨 가득 무엇과도 누구와도 바꿀 수 없네 예배드림이 기쁨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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