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은 2000년 전 아기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심을 기억하며 오늘의 참 의미를 되새기는 절기다. 그분의 성서의 고백처럼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의 증거로, ‘하늘엔 영광, 땅에는 평화'로 이 땅에 오셨다. 하지만 2000년 전 첫 성탄은 초라했다. 말구유에 누인 아기 예수는 동물과 천사, 들판의 목동과 동방박사들의 환영만 받았을 뿐이다.
초라했던 성탄절은 이제 그리스도인뿐 아니라 온 세상의 절기가 되었다. 거리에는 성탄을 기뻐하는 노래들이 울려 퍼지고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인사는 비그리스도인의 입에서까지도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 그리스도는 온 세상에 기쁨과 즐거움을 주는 존재로 칭송받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우리는 이중적 감정에 휩싸이게 된다. 비록 한계가 있고 제한적인 형태라지만 예수 그리스도가 높임 받는 것은 우리에겐 기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선 상업화되고 물량화된 세상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에 대한 참된 의미를 잃어가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로 인해 하나님과 단절된 인간과 이 세상에 오셨다. 그분의 오심은 용서와 화해의 선포, 죄로부터의 해방,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함인 것이다. 우리는 그분이 오신 이 의미를 세상 속에 전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을 포함한 세상, 교회를 포함한 세상은 죄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성결한 삶을 살면서 세상을 성결로 이끌어야 할 그리스도인과 교회조차 죄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 세상을 위해 오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의지해 우리는 죄와의 단절을 선언한 사람들이다. 자신들 속에 숨어 있는 죄된 것과의 과감한 단절을 통해 사회적 신뢰를 회복하고, 이를 통해 비그리스도인과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를 언어만이 아니라 삶으로 전하는 사명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의 오심은 그리스도인과 교회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세상 모든 사람들과 만물을 위함임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은 온 세상 모든 이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를 원하시며, 그리스도의 오심을 통해 하나님이 만드신 이 땅에 온전한 창조질서가 회복되기를 원하고 계신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사람을 바꾸고, 세상을 바꾸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잘못된 것을 찾아내고 그것을 바꾸기 위해 예언자가 되어 외치고, 함께 노력하는 것이 이 시대 그리스도인의 모습이다. 작지만 변화를 이루는 첫걸음을 만들어 가는 것이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억하는 참된 실천이 될 것이다.
그리스도의 오심은 낮고 천한 곳, 소수의 환영인파 속에 이루어졌다. 그래서 성탄의 기쁨을 나누는 온 세상의 불빛, 성탄절 아침의 수많은 예배 인파는 그리스도가 다시 오실 곳이라 부르기 어색한 것이 사실이다.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는 외톨이들, 홀몸노인, 사람이 찾지 않는 사회복지시설, 아침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노숙자 등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 없는 곳에서 우리가 못하는 일을 감당하고 계실 듯하다. 단 한 사람의 소외된 사람, 사랑을 받지 못하는 사람 곁에 예수 그리스도는 계실 것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세상 사람들이 즐거움과 기쁨을 나누는 곳, 인파로 가득한 곳보다 사람이 없는 곳, 외롭고 힘든 이들의 곁, 예수 그리스도께서 찾으실 그곳에 그리스도인이 머무는 성탄절이 되어야 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은 2000년 전에 이뤄진 사건이지만, 오늘을 사는 그리스도인에겐 현재도 계속되는 사건이다. 기억하고 기념만 해야 할 사건이 아니라 오늘 우리의 삶 속에서, 세상 속에서 계속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성탄절의 참된 의미를 회복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여받은, 그리고 그분의 사건을 이어가야 하는 그리스도인의 몫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