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의 성사를 통한 신앙입문

도한기 장로가 주님을 영접하게 된 발단은 그의 부인 조애순 권사와의 결혼과 연관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청년 도한기와 규수 조애순의 만남은 주님을 영접하게 된 그의 일생일대의 전환점을 가져오게 된 하나님의 섭리였다고 할 수 있다.

청년 도한기는 조애순을 본 순간 한눈에 반했다. 조애순은 목재상을 하는 아버지가 이북에서 피란 와서 사업에 성공한 안동의 부자였다. 조애순은 복스러운 모습으로 잘생긴 처녀였다. 한눈에 반한 도한기는 자나깨나 조애순을 잊지 못하고 만나는 순간이 자꾸 반복되기를 갈망했다. 도한기가 조애순에게 청혼을 했으나 조애순의 가정은 독실한 크리스천 가정이었다. 그래서 조애순과 결혼하려면 도한기가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아야 한다는 조건이 제시되었다.

청년 도한기는 조애순이 출석하는 안동장로교회 김광현 목사를 찾아가 상담을 했다. 김광현 목사는 조애순과의 결혼이 성사되기 위해서는 먼저 교회에 등록하여 세례를 받고 독실한 크리스천이 되라고 했다. 도한기는 김광현 목사의 안내를 받아 안동성결교회에 등록하여 1957년 11월에 황신행 목사의 집례로 세례를 받아 결혼을 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어 조애순과 결혼하였다.

도한기가 등록한 안동성결교회는 1953년 10월 20일 십자군 전도대 제3대가 설립한 천막교회였다. 십자군 전도대가 이성봉 목사를 부흥강사로 초빙하여 대성황을 이루었고 그 집회를 통해 큰 은혜를 체험한 도한기 장로는 술과 담배를 끊은 것은 물론이고 세속적인 취미와 생활 중에서 하나라도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지 않은 것들과 단절하여 경건한 신앙생활에 힘썼다. 그는 사회적으로도 독실한 크리스천으로 공인되었다. 그가 업무 관계의 모임이나 사회의 공적인 모임에서 다들 마시는 술 대신 그의 자리에는 으레 콜라가 놓여 있었다.

도 장로는 많은 시간을 기도와 성경 상고에 할애했다. 매일 새벽기도회 참석은 물론이고 아침에 출근할 때마다 먼저 교회로 가서 간절히 기도한 후에 직장에 가는 것이 그의 일상생활이 되었다. 그는 하루에 늘 세 번 시간과 장소, 기도의 제목을 정해놓고 기도했다. 그가 방석을 깔고 무릎을 꿇고 기도드리는 모습이 자녀들에게 깊이 각인되었다.

도 장로는 한때 사업의 실패로 이루 말할 수 없는 고난과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그는 변함없이 기도했다.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는 도 장로와 함께하셨다. 위로하시고 힘을 주시고 피할 길을 주셨다. 도 장로의 기도에 영향을 받은 자녀들은 새벽마다 주님과의 만남의 시간을 지속하며 아버지의 신앙을 이어가고 있다. 
도 장로는 또 가정예배의 중요성을 가족에게 강조하고 매일 가정예배를 인도했다. 가정예배가 어린 자녀들에게는 다소 어려웠지만 그 가정예배가 있었기에 기도와 말씀과 찬양의 은혜를 경험할 수 있었다고 자녀들은 회고한다. 그의 자녀들은 가정예배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가정예배를 인도한 도 장로의 모습 또한 자녀들에게 깊이 새겨졌다.

그는 자녀들에게 순종하기를 가르쳤다.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 순종하고, 하나님께서 세우신 목사님께 순종하고, 하나님께서 권위를 주신 모든 사람에게 순종하라고 가르쳤다. 그리고 어떤 일을 할 때에 그 일을 성급하게 시행하지 말고 깊이 생각한 후에 행하라고 가르쳤다. 그리고 누구와 대화를 할 때에도 성급하게 말하지 말고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여 들은 다음 한 번 깊이 생각한 후에 말을 할 것이며, 늘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그의 마음을 먼저 헤아리라고 가르쳤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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