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테스탄티즘과 개척자 정신으로 세계를 지배하던 미국. 그 미국이 지금 고혈압으로 쓰러진 중환자의 형국입니다.

서브프라임 금융위기로 촉발된 미국의 경제위기는 세계 금융시장의 심장인 월가의 금융시스템을 마비시키며 끊임없는 파국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습니다. 월가를 움직이던 세계 굴지의 금융기관들은 자신들이 그토록 경멸해 마지않던 정부의 개입으로 겨우 목숨을 연명하는 처지에 놓였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투입된 9000억 달러의 공적자금도 침체일로의 미국 경제 흐름을 반전시키는 데 힘이 부쳐 보입니다. 미국이 곧 IMF 구제금융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습니다.

미국 경제가 형편없이 망가진 근본 원인은 역설적이게도 미국을 지난 20년 동안 번영의 길로 인도했던 신자유주의 때문입니다. 신자유주의자들은 국가 권력이 시장에 개입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합니다. 자유시장과 규제완화, 개인의 재산권을 우상처럼 떠받들기 때문입니다. 시장 자율이 정부 개입보다는 훨씬 효율적이고 경쟁도 촉진한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그것이 통했습니다. 미국인들은 경제에 관한한 보수적이었습니다. 흥청망청 사는 나라도 아니었습니다. 절제와 헌신이 미덕이었습니다. 정부도 건전한 산업구조를 유지시키고 충분한 사회보장을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가 미국인들에게 ‘돈 맛’을 알게 한 뒤부터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열심히 땀 흘려 돈을 버는 것보다 돈으로 돈을 버는 것이 훨씬 많이, 훨씬 손쉽게 돈을 번다는 사실을 미국인들이 알아차렸습니다. 정부가 저금리 정책을 쓰면 보통 돈이 시중에 풀리게 되는데, 과거에는 그 돈이 산업현장에 투자돼 생산이 늘어나고 고용이 창출되는 효과를 봤습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시대로 접어들어서는 사람들이 시중에 풀린 돈으로 부동산 투기를 하고 주식과 채권 등 금융상품에 투자해 돈을 벌려고 했습니다. 유능한 젊은 인재들도 월가로 몰렸습니다. 월가 출신 인물이 계속 중앙은행 총재 자리를 지켰습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터진 것도 미국인들이 집값이 오르자 너도나도 은행 대출로 집을 사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거품이 한꺼번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기업의 경영자들도 시장개척보다는 기회만 닿으면 배당을 늘리고 자기 주식을 되사서 주가를 올리려했습니다. 그러한 시장 환경 속에서 금융기법만 눈부시게 발전했습니다. 갖가지 파생금융상품이 패션쇼를 하듯이 시장에 진열됐습니다.

정부는 호황을 계속 유지시키기 위해 돈이 비정상적인 곳에서 움직인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저금리 기조를 유지했습니다. 미국의 현 위기는 이렇게 정부와 시장이 합작해서 만든 작품입니다. 미국인들도 이제는 시장의 자율과 경쟁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 인간에게 무한정한 자유가 주어지면 필연적으로 탐욕과 방종이 개입돼 비극을 낳는다는 평범한 진리도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은 것 같습니다. 전후 미국과 영국의 합의로 성사된 브렌튼 우즈 체제의 붕괴도 시간문제라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브렌튼 우즈 체제는 달러를 국제 기축통화로 삼는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위기가 미국만의 위기가 아니란 사실은 모두가 다 압니다. 당장 우리나라도 주가가 폭락하고 환율이 춤을 추고 있습니다. 갈 곳을 잃은 미국의 투기자금이 석유와 원자재, 곡물 시장을 떠돌면서 부존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가 제일 큰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더욱 두려운 것은 신자유주의가 역사의 무덤 속으로 사라진 뒤의 세상을 예측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신자유주의를 대체할 새로운 지배 이데올로기가 아직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혼돈과 불안, 불확실성만 높은 하늘을 떠도는 우울한 가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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