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젤란이 태평양을 항해 하는 중에 배에 구멍이 생겼다. 그 벌어진 틈새로 물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물을 퍼내면서 계속 항해를 하던 중 더는 어찌해 볼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멀리 육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간신히 육지까지 항해하여 배를 정박해 놓고 육지에 올라가 보니 작은 나무들이 눈에 띄었다. 작은 나무들이 가득한데 그 나무에는 열매가 맺혀 있었다. 그 열매를 짓이겨 보니 끈기가 있었다. 그 열매를 많이 따서 짓이겨 벌어진 틈새를 메울 수 있었다. 벌어진 틈새를 메우고 나서 계속 항해를 하게 되었다. 그 나무를 칼라파테라 불렀다.
칼라파테란 ‘벌어진 틈새를 메우다’는 의미이다. 그 나무 이름을 따서 그 동네 이름도 칼라파테라 하였다. 선교 여행 중에 그곳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 동네에 의지의 한국인 한 가정이 살고 있다. 그 가정은 펜션을 운영하고 있는데 그 이름을 린다 비스타(LINDA VISTA)라 지었다. 그 이름의 의미는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이다. 그 집 주인은 이런 설명을 덧붙였다. ‘좋은 마음을 품고 보는 아름다운 풍경’이란 설명이다. 그곳에서 생각해 보았다. 벌어진 틈새를 메우고 보는 세상은 아름답다.
지금 우리나라의 교회 현실은 구멍이 크게 난 배와 같다. 교단과 교단 교회와 교회의 벽이 높다. 교단 안에서도 보이지 않는 파벌이 조성되어 틈새를 자꾸 벌려 놓고 있다. 틈새가 점점 벌어지고 물이 차 들어오고 있는 배 속에서도 서로의 주장만 늘어놓고 있다. 벌어진 틈새를 메워 주는 사람들이 나타나지 않으면 얼마 후에는 같이 침몰하고 만다. 똑똑한 사람은 많은데 그 구멍을 메울 사람이 적다. 누가 잘났든 누가 이기든 소용없는 일이다. 이기주의적이고 자기중심적 신앙으로는 같이 파선하고 만다. 참으로 서글픈 현실이다. 누가 벌어진 틈새를 메워 줄 것인가?
지금은 자기를 죽여서 벌어진 틈새를 메우는 거룩한 바보들이 필요한 때다. 교회를 살리고 나라를 살리는 사람들은 똑똑하고 잘난 이기주의자들이 아니다. 자기 것만 옳다고 우기고 서로 다른 사람들을 정죄하는 사람들도 아니다. 예수님처럼 자기를 십자가에 내어줌으로써 인류를 살려낸 작은 예수들이 필요하다. 자기를 죽여 남을 살리는 소리 없는 거룩한 바보들이 절실히 요청된다.
거룩한 바보들이 많은 곳에 벌어진 틈새가 메워진다. 잘못한 것은 자기 때문이라고 모든 죄를 뒤집어쓰고 잘한 것은 다른 사람 때문이라고 공을 돌리는 사람, 자기를 죽여 다른 사람을 살리는 사람들이 많을 때 그 공동체가 행복해진다. 가정이든 교회든 교단이든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함께 공동체로서 살고 있는 곳을 행복하게 하려면 서로가 거룩한 바보들이 되어야 한다.
거룩한 바보들에게는 순교의 영성이 있다. 순교의 영성은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십자가에서 자신의 몸을 내어 준 예수 그리스도의 삶속에서 찾을 수 있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라면 예수님의 삶을 본받아야 한다. 예수님의 삶은 순교정신이다. 그 누구와도 눈높이를 맞추어서 저들과 함께하고 자신의 생명을 내어줌으로써 구원의 길을 열어 놓으셨다. 자신이 죽고 타인을 살리는 일은 바보들이 하는 일이다. 이런 바보를 거룩한 바보라 한다.
거룩한 바보들, 진정한 순교의 영성이 가득한 사람들로 거듭날 때 한국교회에 희망이 있고 우리 교단에 희망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