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 1:23∼29)

언제부터인지 교회마다 정문에 ‘신천지 교인 출입금지’라는 포스터나 경고 문구가 붙어 있습니다.
한국교회 역사 이래 특정한 이단을 지칭하여 교회마다 출입 금지라는 경고 문구를 부탁한 일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만큼 ‘신천지’ 이단으로 인한 교회의 피해와 고통이 크다는 것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달리 생각해 보면 교회 공동체 안에 믿음이 굳게 서지 못한 일꾼들이 있다는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현재 한국교회 환경은 바울이 사역하던 당시 골로새 교회가 처한 상황과 비교해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당시 골로새 교회가 경제적인 어려움, 또 이단들이 퍼트린 거짓된 환상으로 인하여 복음에 굳게 서지 못하고 흔들리는 성도들이 있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바울 사도는 이런 경제적 어려움과 영적 위기에 선 골로새 교회에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흔들림이 없는 참된 일꾼이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참된 일꾼의 필요성을 절감하면서 골로새 교회에 편지를 썼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라 이 복음은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바요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꾼이 되었노라.”(골 1장 23절)

바울이 흔들림이 없는 일꾼의 사명을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그동안 빠르게 성장한 교회는  갑자기 많은 일꾼이 필요하다 보니 일꾼을 세울 때, 겉으로 드러난 일반적인 기준으로 일꾼을 세운 경우도 있습니다.

세상에서의 일꾼은 능력이나 숙련이 아니라 지명도와 물질을 가지고도 얼마든지 주어진 일들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아닙니다. 교회는 복음에 대한 확신과 열정이 있는 성도들이 일꾼으로 세워질 때 흔들림 없이 감당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분명하게 자신이 교회 일꾼이기에 앞서 복음의 일꾼임을 강조합니다.
교회 일꾼은 또 일하는 목표가 분명해야 합니다. 그런데 일꾼들이 왜 일하다가 중도에 흔들립니까? 교회 일꾼으로서 처음 목표가 분명하지 않거나 아니면 중간에 일꾼의 사명 목표에서 벗어났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일꾼 된 목표를 분명하게 말합니다.‘내가 일꾼 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는 것이 무엇이라고 선언합니까? 바로 우리 안에 있는 영광의 소망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고, 권면하고 가르쳐 사람들을 예수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는 것이 일꾼의 목표임을 선포합니다.

흔들림이 없는 일꾼은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하는 일에 어떤 어려움이 와도 이일에 내 인생을 투자할 분명한 가치가 있다고 확신하면 고난 앞에서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뻐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니 기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남은 생애, 모든 것을 투자해도 될 만한 가치 있는 일은 다른 사람을 예수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위해서 고난 받은 적이 언제였습니까?
주님을 위해서 받은 고난은 분명한 가치가 있는 고난입니다. 하나님은 이 시대에 복음의 소망과 영광을 위해서 기꺼이 십자가를 진다는 목표를 가진, 그리고 여기에 고난 받을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 참 일꾼을 찾고 계십니다. 그런 일꾼이 바로 흔들림이 없는 일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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