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론이 있을 수 있겠지만, 골고다의 십자가 사건 이후 가장 예수를 닮은 삶을 살아간 사람으로 교회사가들이 꼽는 사람은 아시시의 성자 프란체스코(Francesco, 1182~1226)이다. 1209년 어느 날 프란체스코는 예배당 뒷자리에 앉아 있었고 사제가 읽은 성경 말씀은 마태복음 10장 5~15절이었다. 그 순간 프란체스코는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움직일 수도 숨 쉴 수도 없었다. 십자가의 주님이 제단에서 말씀하고 계셨기 때문이다.

▨… 그날 이후 그는 구두를 벗어버린 맨발에 농부가 버린 낡은 자루옷을 걸친 모습으로 평생을 살았다. 그의 허리띠는 낡은 새끼줄이었다. 사람들이 그에게 붙여준 별명은 ‘보베리오’(가난뱅이)였다. 그의 짧은 생애는 십자가의 주님이 일러주신 말씀에만 집중되어 있었다. “프란체스코! 너는 가서 내 집을 세워라. 내 집이 무너져 가고 있다.”

▨… 프란체스코가 후계자 엘리야에게 지도권을 물려주었을 때, 눈은 멀었고, 위병으로 음식을 먹을 수 없었으며, 손발의 성흔(stigmata)으로 걷기조차 어려웠으며, 불면증에 시달렸었다. 그런 몸으로 프란체스꼬는 아시시의 광장에 섰다. 머리에 한 사발의 재를 끼얹고 꺼져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여러분은 나를 성자로 여길지 모르지만 나는 많은 나쁜 일을 저질렀음을 하나님과 여러분 앞에서 고백합니다.”

▨… 어느 노(老)목사가 말했다. 한국교회에는 대속의 은총이 넘쳐서인지 목사들에게 죄의식이 전혀 없다고…. 죄의식이 없으니 회개가 없고 회개가 없으니 개혁은 언제나 강 건너 불일 뿐이다. M.루터 이후 기독교회의 이상은 항상 개혁하는 교회에 있었다. 개혁하는 교회라는 말이 다른 것(상대)을 개혁하자는 말이 아니라 자기개혁을 의미하는 말임을 모르는 목사도 있는지 멍청이처럼 궁금해진다.

▨… 2·3·4부흥운동의 영향일까. 교단 안에서 작은 교회들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 아직 자립하지 못하고 있는 교회들의 아픔을 함께 나누자는 손길들도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그 얼마되지 않는 물질이 행여라도 이 땅의 목회적 현실에서 그나마 ‘보베리오’의 모습을 닮으려 노력하는 작은 교회 목회자들의 긍지를 산산조각내 버리지 않을까 염려된다. 가난해도 동정만은 사절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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