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입은 하나님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말고 믿는 자가 되라(요 20:27)
그들은 하나같이 상기된 얼굴로 그분을 다시 보았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난 도저히 그들의 말을 믿을 수 없었지. 이미 무덤에 장사된 그분을 다시 보았다는 말을 믿을 수는 없었어. 그분을 잃은 상실의 슬픔이 지나쳐 집단적으로 헛것을 봤을 것이라 생각을 했지.
의심하는 날 향해 더욱 목소리를 높이는 그들에게 결국은 화를 내고 말았어. 난 그저 화가 나 있었어. 나 역시 상실의 상처를 달래느라 힘이 들었는데 다시 그 상처를 덧나게 하는 사람들이 미웠거든. 홧김에 나도 모르게 소리를 쳤지. 그분의 손과 발과 옆구리에 난 상처에 내 손가락을 넣어볼 수 있다면 믿겠다고 말이야. 내 말에 한순간 정적이 흘렀고, 모두들 내게서 등을 돌리며 더는 말을 잇지 못하더군.
며칠 후 난 드디어 그분을 만나게 됐지. 죽은 줄로만 알았던 그분은 분명 내 눈앞에 살아계셨어. 처음엔 눈을 의심했지만 잠시 후 내 고막을 부드럽게 울리는 그분의 음성을 듣고는 내가 유령을 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어. 그분은 너무 놀라 온몸이 굳어버린 내게로 다가 오셨지. 그러고는 천천히 겉옷을 걷어 올리셨지. 놀랍게도 그분의 옆구리엔 창에 찔린 상처가 여전히 남아 있었어.
그분께서는 눈앞에 벌어진 광경으로 두려움에 떨고 있던 내 손을 살며시 잡아 그분의 상처로 가져갔어. 그분은 자신의 상처에 내 손가락을 넣어보고 다시 살아나신 것을 믿으라고 하셨지. 내 손가락이 그 상처에 닿았지만 도저히 손가락을 넣어볼 수는 없었어. 손가락이 바르르 떨리고 있었어. 그러다 갑자기 눈에서 눈물이 터졌지.
난 그분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계속 울었어. 그분께서 내 손을 다시 잡아 일으키실 때까지 난 흐느껴 울었지.
그때는 그분께서 다시 사셨다는 흥분 때문에 모르고 있었지만 나중에 이런 의문이 생겼어. ‘왜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여전히 그 몸에 상처를 가지고 계셨을까?' ‘왜 그분은 완전한 몸으로 부활하지 않으셨을까?' 그분이 정말 전능하신 하나님이셨다면 상처 있는 몸으로 부활하실 이유가 없다는 생각을 했지.
긴 고민 끝에 난 나름의 해답을 얻었어. 그분의 상처가 없었다면 내 상처는 치유될 수 없었다는 것을 말이야. 그분이 상처 입은 하나님이셨기에 상처 입은 내 자신이 그분께 나아갈 수 있었던 거야. 그리고 그분은 기꺼이 자신의 상처로 내 상처를 치유하셨지.
그날을 생생히 기억해. 아무 주저 없이 겉옷을 올려 자신의 상처를 보여주셨던 그날. 그분은 내 상처가 회복된다면 자신의 상처가 다시 찢어지는 아픔도 기꺼이 감당하시려 했던 거야. 난 상처 입은 하나님이신 그분을 통해 어쩌면 내가 가진 상처도 누군가의 상처를 치유하는 거룩한 자원으로 사용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어. 그 누군가에게 내 상처를 기꺼이 열어 보일 수 있다면 말이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