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은 예전처럼 결혼식이 많지 않습니다. 결혼식도 교회에서 하는 경우가 적습니다. 음식 대접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라나…. 하기야 여전도회를 중심으로 음식 장만하는 것이 옛날처럼 쉽지만은 않은 것이 현실이고, 또 시설도 열악하기 때문이겠지요.
근대 우리나라 역사에서 가슴 아픈 결혼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1910년부터 1924년까지 약 14년 동안 사진 한 장씩으로 951쌍이나 결혼을 올린 일이 있었습니다. 하와이 사탕수수밭에서 노동하던 총각들과 한국 처녀들의 혼인이었습니다. 이영옥 씨는 1900년 경남 함안에서 이석준 씨의 장녀로 태어났습니다. 그녀는 총명했고, 17세가 되던 해에 자진해서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교회에 나가면 예수쟁이라고 놀림을 받기가 일쑤였지만 그녀는 믿음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녀는 18세가 되던 해 어느 날 진주에서 온 한 할머니 중매쟁이로부터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에 가 있는 한국 총각에게 시집갈 것을 권유받았습니다. 얼마 후 그녀에게로 편지가 왔는데 이웃집 두 친구들은 젊은 총각인데 그녀에게 편지한 사람은 43세나 된 노총각이었습니다. 편지를 받은 그녀는 “왜 이런 사람에게 나를 중매합니까?”라고 호소했지만 “이미 정해진 운명이니 감수하라”고 중매쟁이는 잘라 말했습니다.
그녀는 그리 좋지 않은 감정이었으나 이왕 온 거니까 한 번 뜯어나 보자 하는 마음으로 편지를 뜯어 읽었습니다. 그분이 보낸 편지의 내용은 “양친을 모시고 주님의 은혜 가운데 안녕하시고 온 가족이 다 평안하신지요. 혼인을 사진 한 장으로 결정하는 것은 섭섭한 일이 아닐 수 없소. 그러나 여기에도 혹시 인연이 있는지 모르오”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영옥은 ‘주님의 은혜’란 문구에서 결심을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부쳐온 돈 300달러를 일본 유학을 간 오빠의 학자금으로 보내고 일본 요코하마에서 시베리아호를 타고 9일간의 항해 끝에 1918년 5월 5일 수요일 호놀룰루 항구에 도착했습니다.
영옥이를 맞이하는 노총각은 반가움을 못 이기며 두 손을 덥석 잡아주는데 그손이 마치 벽돌같이 거칠었다고 그녀는 회상합니다.
18세의 처녀 이영옥과 43세 노총각 정봉운은 이렇게 만나 호놀룰루감리교회에서 교우들의 축복 속에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이들 부부의 하루는 아침기도로 시작되었습니다. 남편은 사탕수수밭에서 노예 같은 대접을 받아 가면서도 성실히 일하며 작업반장이 되었습니다.
남편이 25년이나 연상인 것을 감안한 영옥은 일찍부터 아들만 6명을 낳아 기독교 교육을 시켰습니다. 이런 가운데 그녀는 떡 장사를 하면서 호놀룰루 그리스도감리교회와 이승만 박사가 개척한 한인 기독교회를 주축으로 독립자금을 모으기에 열성을 다했습니다.
아들들은 잘 자라서 미국 정부관계, 병원, 가구공장 사장 등 다방면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그녀는 이승만 대통령 취임 1주년 기념식에 초청받아 40명의 부인을 데리고 서럽게 떠났던 조국 땅을 영광스럽게 다시 밟았습니다.
우리는 이영옥 할머니의 생애를 통하여 몇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첫째, 기도한 대로 응답되면 그대로 순종해야 합니다. 둘째, 누구나 삶의 현상에서 실망할 수 있으나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셋째, 우리 삶이 비록 화려하지 못할지라도 신앙인답게 하나님의 제자로 서서 이름에 걸맞은 사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육신의 빵도 귀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더욱 귀중합니다.
이영옥 씨는 자신이 불행하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 개인적인 행복 추구의 열망이 누구보다 더 강했지만 잃어버린 조국을 찾겠다는 선구자적 신념이 여린 가슴 속에서 불타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가난했던 이영옥으로 하여금 951명의 사진 결혼 여인 중에서 가장 많은 복을 받고 승리롭게 94년간 장수하게 했던 요인이 되게 했습니다.
오늘날 결혼이 30세를 넘기는 만혼인데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경제적 이유가 가장 크다고 하며 따라서 자녀 출산도 저조할 뿐 아니라 그나마 출산이 늦어지는 형편입니다. 이런 문제는 국가적으로 미래를 위해서도 적극적 검토가 있어야 하겠지만 이런 사회적 현상은 교회편에서 볼 때 주일학교 쇠퇴의 중요한 이유가 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어려운 사정이야 어느 시대인들 없겠으며 이유라면 누구에겐들 없겠습니까. 이러다가는 목사님들에게 주례도 생소한 일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