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7년 10월 31일은 마르틴 루터가 비텐베르크 교회 정문에 95개조의 항의문을 붙이고 종교개혁을 단행한 날이다.
교황의 무오설과 절대적 세속군주로서의 군림, 성경보다 제도나 전통을 앞세우고 면죄부 판매와 다종교적 혼합주의, 성직매매와 유물숭배, 허식적 예배 등으로 기독교가 1000년 동안 로마 가톨릭에 빼앗겼던 예수님의 보좌에 대한 환원이며 동시에 또 다른 하나로는 헬레니즘을 헤브라이즘으로 바꾸어 놓는 운동이기도 하다.
올해로 종교개혁 496돌을 맞고 이 땅에 복음이 들어온 지 128년을 맞는 한국교회는 그 어간 온갖 고난과 수난의 역사 속에서도 성장에 성장을 거듭하여 1000만 성도와 세계 선교에도 이바지해 세계 제2의 선교사 파송국이 되는 등 안팎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또 한 번 근본으로 돌아갈 필요가 생겼다.
한국교회는 중세 로마 가톨릭교회를 방불케 하는 교권주의와 분규, 갈등과 편파와 윤리적 타락상으로 사회로부터 신뢰와 영향력을 잃어 역으로 비판의 대상이 되어가고 있다.
개혁자는 말하고 있다. 교회는 권력과 재원을 지닌 관료체제적인 조직체가 아니라 만인제사장직에 근거하여 새롭게 태어난 그리스도인들의 공동체여야 한다며 그 핵심을 ‘오직 말씀(성경)으로 오직 믿음(예수)으로 만인제사장직으로’라고 말이다.
예수님은 역사의 출발점이자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관계를 이끌어주시는 원천이며 그의 교훈은 좁은 길로 가라는 말씀이고, 회개의 촉구였다. 이제 한국교회는 회개할 기회를 실기한 두아디라교회의 전철을 밟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할 것이며(계 2:21~23), 미래 사회에 결핍된 욕구를 선의로 채워주고 희망을 심어주는 등불이 되어야 한다.
교회의 개혁은 교회의 제도나 구조가 성서를 추월하고 지도자의 성경 위 군림이 아니라 비우고 섬기고 갈등에서 화합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또 지나친 개인주의와 개 교회주의에서 벗어나 말씀 중심의 성숙한 교회로 변신해 세상 속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해 작은교회와 세계선교에 기여하고 성경을 본래의 자리로 되돌려 놓는 데 진정한 개혁의 의의가 있다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