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은 생명을 담고 있는 그릇요즈음 한국 사회는 모든 세대가 꽃미남, 얼짱, 몸짱을 갈망한다. 언론이나 매체가 그러한 사회적 풍토를 조장하기도 하지만, 세대간에 거의 한 목소리로 몸에 관심을 갖는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짝짓기에 대한 욕망 때문일 것이다.

얼짱 몸짱의 기준은 물론 섹시미(美)다. ‘섹시'하다는 말은 한편으로 매력일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성폭력에 해당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단어의 이중적 속성에도 불구하고, 언론이나 인터넷 광고, TV 광고에서는 그러한 광고 카피 문구를 버젓이 사용하고 있다. 말하는 이들이나, 듣는 자들이나 ‘몸'에 대한 최고의 찬사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연예인은 물론이거니와 정치인, 심지어 보통 사람들까지 온통 섹시미를 드러내지 못하여 안달들이다.

이 때문에 쌍꺼풀 수술은 기본이고, 턱 수술에, 종아리 수술을 넘어 전신 수술을 하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은 다들 비슷비슷한 외모를 지닌 것 같다. 섹시미가 무한질주하고 있다. 서로가 서로에게 성적인 매력만을 요구하는 시대가 도래할 것 같다. 참으로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하지만 이 길을 따라가기 위해서는 평생 성형을 해야 하고, 다이어트(fitness) 클럽에 다녀야 하고, 비만과 노화를 막는 약이나 주사를 계속 맞아야 한다. 그래서 마침내 삶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몸만 덩그러니 남게 된다. 쇼윈도에 걸린 마네킹처럼. 실제로 이 시대의 사람은 점점 더 마네킹을 닮아 가고 있다. 참으로 눈부실 만큼 아름답지만 생명 의지는 홀연히 증발해버린 마네킹이 되어가는 것이다.

다행히 성형 수술에 성공하여 완벽한 외모를 갖추어 얼짱 몸짱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에 네티즌들이 달아놓은 악플을 견디지 못하여 자살하는 연예인들을 간혹 보게 된다. 모래성처럼 생명을 버리는 이유는 그 몸이 생명을 담고 있음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섹시함과 생명을 맞바꿀 수 없다. 몸은 언제나 섹시함 너머 생명을 담는 그릇이다.

이 시대에 생명을 담고 있는 몸에 대한 비전은 무엇일까? 바로 책을 가까이 하는 독서이다! 암송이다! 이는 대부분의 고전들이 잘 말해주고 있다. 고전 가운데도 최고는 역시 성경이다.
성경은 우리에게 이 시대의 마네킹을 닮기보다 예수를 닮으라고 엄히 말씀하고 있다(롬 12:2). 성경을 통한 도리의 암송은 지식을 사적 소유화하는 암기가 아닌, 함께 리듬을 타면서 잘하면 잘하는 대로, 모자라면 모자란 대로 소리를 합치는 것이다. 성경의 뜻을 알지도 못하면서 암송하면 무엇하냐고 할 수 있지만, 뜻을 완벽하게 이해한 다음 성경의 도(Truth)를 알 수도 있고, 암송을 통하여 음미를 하다보면 도(道)를 알 수도 있게 된다.

원래 독서는 소리 내어 읽는 것이지, 속으로 달달 외는 것이 아니다. 곧 낭송을 한다는 것은 체력과 기운(생기)을 소통하는 앎의 신체성이다. 그래서 옛적부터 우리 부모님들은 글 읽는 소리를 좋아하셨고, 아무리 듣고 또 들어도 싫증나지 않는다고 하셨다. 주인님은 모두가 소통할 수 있는 성경을 읽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딤후 3:16~17).

소위 독서의 계절이라고 말하는 가을이 왔다. 교회마다 새 마음으로 성경을 읽어야 하고, 말씀을 암송해야 한다. 소중한 생명을 담고 있는 우리의 몸을 톱날 사용으로 얼짱 몸짱만 만들지 말고, 내면세계에서 흘러나오는 영성의 향기로 우리의 몸을 채워야 할 것이다. 그리하지 않으면 우린 그 누군가를 얼짱 몸짱이 되도록 부추기어 결국, 그 인생을 자살로 내몰고 마는 공범이나 악한 이웃이 되어질 것이다. 쾌락을 향하여 문을 열면 열수록 고통도 그 만큼 문을 열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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