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건을 그 얼굴에 쓴 것같이 저희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라도 그 수건이 오히려 벗어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 수건이 오히려 그 마음을 덮었도다”(고후 3:12~15).

이스라엘의 영도자 모세가 하나님과 대면한 후 그 얼굴에 너무나 큰 광채가 나므로 얼굴에 수건을 덮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를 교훈삼아 인간에게는 덮어진 수건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없고 자유도 소망도 없다고 했습니다.

수건으로 얼굴을 싸는 경우는 죽은 사람에게 하는 것이요, 사형 직전에 하는 일이요, 전염병자에게 하는 것입니다. 수건으로 싸인 사람은 감긴 눈, 막힌 귀, 봉한 입, 마비된 수족의 소유자입니다. 아프리카의 다이아몬드를 영국의 캔디와 바꾸는 것이요, 소련이 1933년에 시내산 성경사본(The Codex Sinaitucns)을 영국에 팔아버린 일과 또 면적이 텍사스의 두 배나 되고(텍사스는 로드아일랜드의 220배), 금과 기름, 나무의 지하자원과 군사기지가 되는 알래스카를 미국에 파는 결과가 된 것입니다.

최초의 범죄자는 나뭇잎으로 부끄러움을 덮었고, 취한 노아는 아들이 뒷걸음으로 수치를 덮었고, 아간은 부정물을 땅에 묻었고, 유대인을 학살하려던 하만은 그의 얼굴이 수건에 싸였습니다. 악한 종은 자기가 받은 한 달란트를 수건에 싸서 땅에 묻었고, 죽은 지 나흘되는 나사로는 주님의 명령으로 수건에 싸인 것과 베로 동인 수족을 풀어놓아 다니게 하였습니다(요 11:40~45).

국가나 교회 모두 닫힌 정책, 닫힌 교회, 닫힌 대화, 닫힌 인간성, 닫힌 진로(進路), 닫힌 인생은 소망이 없고(고후 3;12), 결국을 주목하지 못하고(장래가 암담하고, 13절), 주께로 돌아가지 못하고(16절), 자유가 상실되고(17절), 영광의 세계를 알지 못합니다(18절). 즉, 성공의 면류관이 그 사람에게는 제외되고 적자인생으로 불쌍한 최후가 된다는 뜻입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 3:20).

폐쇄된 문은 공기오염을 초래하고, 닫힌 문은 소통을 어렵게 합니다.
바벨론의 열린 창은 다니엘로 기도의 문, 전도의 문, 비밀의 문을 열게 했습니다. 열린 하늘은 사닥다리를 보냈고(야곱), 하늘의 이상을 보였으며(에스겔), 하늘의 음성이 들렸고(마 3장), 그 같은 음성은 최대의 핍박자 사울로 다메섹의 전환을 일으켰습니다.

무명과 삼베수건, 명주와 나일론 수건은 속히 벗길 수 있으나, 마음에 동인 인생의 회의(懷疑)와 좌절(挫折), 맹신과 향락의 수건은 벗기기 어렵습니다. 중동과 파키스탄의 여인 그리고 이슬람교도는 얼굴을 가립니다. 미개국가 저개발 상태는 언제나 덮인 그늘이 있습니다.

사울의 눈에 비늘이 벗어지고 바울이 된 것같이 불신과 옹고집으로 덮인 수건을 벗고 대한해협 넘어 넘실거리는 태평양을 바라봅시다. 그리고 눈을 들어 저 세계를 바라봅시다. 왜냐하면 ‘수건으로 덮인 마음’은 영원을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저작권자 © 한국성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