릭 워렌은 “목적이 이끄는 삶”에서 “하나님과의 협상”이란 말을 썼다.
감히, 사람이 하나님과 협상이 있는 것일까? 의미있고 재미있는 표현이다. 창세기 18장 아브라함이 소돔성의 멸망을 앞두고 하나님께 간청을 거듭하며 협상을 벌였다는 내용이다. .
아브라함이 어떤 위치에 있었기에 하나님과 협상이 가능하다고 말하는가? 해답은 책에서 나오듯이 하나님과 깊은 우정 속에서 솔직함 때문이다. 협상은 상호 신뢰 속에 이루어지는 통념이 있지만 책속의 깊은 의미의 선행조건은 솔직함을 그 조건으로 한다.
아브라함은 완벽하지 못한 인물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아브라함이 솔직하고 순수해 믿음의 협상자가 됐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또 한 가지는 깊은 우정이다. 진정한 우정은 무엇에 기준을 두는 걸까? 우리의 삶속에서 성경이 가르치는 진정한 우정에 대하여 릭 워렌은 상호 완벽함이라고 말한다. 예수님께서는 친구가 될 수 없는 세리와 죄인도 친구라고 말씀하셨다. 내가 완벽하지 않아도 하나님은 나의 진정한 우정의 친구로 옆에 계셔 주시겠다는 말씀이다.
그래서 뻔뻔스럽거나 몰염치하여도 하나님께는 솔직함으로 보여질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신앙 생활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겠는가라는 라는 생각을 해본다.
내가 이렇게 뻔뻔해도 하나님께선 믿어주신다는 것인가? 참으로 현실성이 없는 말씀이라 생각되지만 하나님과의 협상은 마치 응석부리는 아브라함을 향하여 그 투정을 귀찮다 하지 아니하시고 모든 것을 들어주시되 아브라함을 통하여 이루고자 하시는 큰 계획이 있기에 그 응석도 들어주셨을 것이라고 믿는다.
얼마나 멋있는 말인가? 나를 통한 다른 계획이 있다는 그 믿음. 그리고 50명에서 10명으로 낯추는 이 능력의 협상자를 간단히 볼것인가?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 협상은 기막힌 협상이다. 얼마나 많은 기도생활을 하였기에 신뢰를 얻고 협상할 수 있단 말인가?
솔로몬처럼 주야로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며 지혜를 구하면 될 수 있을까? 지구촌교회 이동원 목사님이 말씀한것 처럼 “한국교회의 가장 큰문제는 “면목상의 교인”(Nominal member)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는 교회에 나오지만 구원의 확신도 삶의 목적도 없이 종교적 분위기에 익숙한 교인들만 만들어 내고 있다” 라고 지적한 것처럼 타성에 젖어있는 신앙인이 되지 않기를 노력하면 될수 있을까?
추접한 욕망들을 버리고 온간 불협화음을 멀리하며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그 무엇을 찾기를 노력하면 가능한가? 아니면 교회출석, 헌금, 전도, 봉사 등에 열심히 하여 자타가 인정하는 믿음생활 잘하는 사람이라 인정받으면 가능한가?
참으로 하나님과의 새롭게 정립하는 신뢰는 깊고 오묘한 진리가 숨어있는 것 같다. 하나님과의 정직한 친구로 하나님이 나에게 다가와 진솔한 협상자로 인정해주고 깊은 우정의 대상자가 된다면 나는 신앙의 승리자가 될 것이다.
카일 아이들먼(Kyle Idleman)의 예수님과의 ‘관계정립’(Define the Relationship) 즉, DTR 시간은 사람과 사람사이에서 관계를 깊이하기위한 대화를 서로 확인하는 시간으로 하나님과의 ‘관계정립’전에 ‘인간관계정립’의 우선을 요구한다고 했다.‘인간관계’ 우선적 신앙생활은 예수님의 교훈이기도 하다, 그렇다. 우선 작은것부터 나를 정립하는 신앙자세인 것 같다.
분명한건 하나님을 빙자한 협상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본다.
하나님을 빙자하고 온갖 허울좋은 모양새를 우리는 많이 보아왔다. 그러한 자를 하나님은 협상자로 보지 않을것으로 확신한다. 협상자가 되려면 먼저 순수한 인간이 되어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