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명 조식(曺植)은 학문의 성취라는 점에서는 당대의 석학 퇴계 이황과 쌍벽을 이루는 명망가였다. 그러나 두 사람의 삶의 길은 천양지차를 드러내었다. 이황은 정승의 자리에까지 올랐고 조식은 이황의 천거로 왕의 부름을 받았으나 한사코 이를 사양하여 서원을 지키며 제자들을 가르치는 일에만 전념하여 자신의 삶을 다하였다. 사대부로선 보기 드문 일생이었다.

▨… 그 남명에게 어느날인가 경상감사를 제수받은 이양원이 인사차 들렀다. 무인이 아니면서도 칼을 차고 있는 남명의 모습에 의아해진 이양원이 물었다. “칼이 무겁지 않습니까?” 남명이 그 말에 빙긋이 웃으며 대답했다. “어찌 무겁겠는가. 내 생각에는 그대의 허리에 두른 금대(金帶)가 더 무거운 것 같은데”라고. 이양원이 “재능은 부족하면서 소임이 무거워 감당해내지 못할까 두려습니다”라고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 남명의 진면목을 알려주는 압권은 퇴계에게 보낸 글에서다. 그는 그 글에서 오늘의 지도자들도 마음에 새겨야할 내용을 보여주고 있다. “손으로는 쇄소하는 범절도 잘 모르면서 입으로는 천리(天理)를 담론하여 이름만 도둑질하고 사람을 속이려 하며 다른 사람에게까지 해를 끼치니 선생장자께서 이를 꾸짖어 그치게 하지 아니하는 때문입니까?” 이 편지를 받은 퇴계의 표정은 어떠했을지  조금은 궁금하다.

▨… 예수께서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고 하셨다(마 23장).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함을 가르치시기 위한 말씀이지만, 오늘의 목사들에게는 어쩌면 영원히 삼킬 수 없는, 목에 걸리는 가시 같은 말씀이 아닐 수 없다. 랍비처럼 대접받고 싶은, 지도자로 추앙받고 싶은 인간의 본성에 대해 예수께서는 왜 그렇게 엄중하셨던 것일까. 제자의 길을 망치는 것으로 판단하셨기 때문일까. 철 없는 목사들이나 할 질문인지, 이 또한 조금 궁금하다.

▨… 성혜(成蹊)라는 말이 있기는 하다. 복숭아와 오얏 꽃이 있는 곳은 그 아름다움 때문에 샛길이 생기게 마련이라는 뜻이다. 우리 성결교회의 지도자들은, 섬김이라는 예수님의 명령을 투철하게 감당해 향기가 나는 분들이기에 저절로 샛길이 생겨 직분을 부여받았다고 믿고 싶다. 그 직분이 ‘이양원의 금대’로 끝나지 않기를 바라는 성결인들의 한곁같은 마음을 헤아려 주실 수 없는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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