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손가정 10년만에 66% 증가 ··· 절반은 빈곤에 허덕
교회의 관심 필요 ··· 지역사회 실태파악, 생활지원 등 나서야

#올해 팔순을 넘긴 김정순 할머니는 이혼한 아들내외 대신 아이들을 맡아 키운 지 올해로 꼭 10년이 됐다. 기초수급자인 본인생활도 빠듯한 마당에 중고등학생을 둘이나 키우려니 용돈 한번 넉넉히 주지 못해 마음이 무겁다.
조손가정 20만명 육박
이혼 등으로 가정이 한번 무너진 자리에 ‘조손(祖孫)가정’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가정이 생겨나고 있다. 조손가정이란 성인 자녀의 이혼이나 재혼, 사망, 가출, 경제난 등으로 인해 할머니 할아버지가 부모를 대신해 손자녀와 함께 사는 가정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이혼한 부부 중 58.6%가 20세 미만의 미성년 자녀를 두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고, 이들 자녀의 30%이상은 농촌지역으로 이동해 할아버지나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따라 조손가정은 지난해 20여만 명으로 늘어났다. 10년 만에 65%나 증가한 셈이다. 통계에 포함되지 않은 수까지 고려한다면 그 수는 훨씬 많을 것으로 예측된다.
‘빈곤’이 가장 큰 짐
대부분의 조손가정은 생활보호대상에서 아예 제외될 때가 많아 복지의 사각지대에 서 있다. 조손가정 가운데 조부모가 손자녀에 대한 가정위탁부모로 지정될 경우에만 양육 보조금을 지원받는 정도다. 2007 통계청 전국 가계조사를 보면 조손가정 가운데 최저생계비를 밑도는 가정은 48.5%에 달할 정도로 조손가정의 절대빈곤 현상은 심각한 상황이다. 또한 손자녀를 양육하는 조부모의 90% 이상이 60대 이상 고령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극빈 생활로 각종 노인병의 치료조차 받을 수 없는 현실이다. 이것은 손자녀 교육과 건강에 소홀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조손가정 내에 고령화사회 문제와 청소년 문제, 교육 문제, 가족 문제가 복합적으로 발생하고있는 것이다.
노환·정서불안 등 문제
다른 문제점도 있다. 손자녀 양육에 지친 조부모가 병환으로 드러눕게 되면 아이들이 생활을 도맡게 되는 악순환을 겪게 된다. 아이들의 부양자로 있는 조부모 가운데 81.5%가 현재 병이 있거나 건강하지 않다는 조사결과는 이런 상황이 향후 적지않게 발생할 것임을 짐작케 한다.
경민이(5학년)는 자신을 돌보던 할머니가 쓰러져 벌써 3년째 혼자 병수발을 들고 있다. 30여만원 기초생활비를 받아서 병든 할머니를 보필하고, 밥도 해먹자면 종종 학교를 빠져야 한다. 이러다 보니 언제 할머니가 돌아가실지 모른다는 생각은 정서 불안으로 이어지고 있다. 학교성적은 언제나 하위권에 머물 수밖에 없다.
이경수 중앙가정위탁지원센터 소장은 “조손가정의 아동들은 부모와 생활하지 않은 것 자체에 불안감과 괴리감을 느끼고 있어 정서적으로도 열악하며 교육적으로는 학습 부진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고 말했다. 가난과 부모와의 이별로 인해 상대적 박탈감까지 쌓이면서 아이들은 성취감보다 절망을 먼저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교회주변 상황파악 나서야
여기에 교회의 도움이 요청되고 있다. 교회가 앞장서 주변의 조손가정 실태를 파악하는 것이 그 첫걸음이라는 지적이다. 교회 주변지역만이라도 조손가정의 상황을 교회가 맡아 파악하고 필요한 도움을 동사무소에 알리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두왕교회 김형철 목사는 “할머니 성도가 아이들을 어렵게 키우는걸 보고 동사무소에 도움을 청해드렸는데 정부지원을 받게 됐다”면서 “교회주변의 상황을 잘 살펴 도움요청의 방법을 알려주는 역할을 교회가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심방과 축호전도를 통해 교회인근 지역상황을 파악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제안했다. 또한 지자체와 연계해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알려주는 것도 교회의 몫이라고 덧붙였다.
작은 관심으로 큰 사랑 전해
구체적인 교회의 지원방법으로는 많은 교회에서 진행하는 지역나눔 프로그램을 활용해 볼 수 있다. 조손가정을 주일 식사대접, 가가호호 도시락(밑반찬) 배달 대상으로 선정하고, 방과후교실에 조손가정 아이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거나 학습지도 봉사원을 연결하는 방법이 추천되고 있다.
또한 조손가정 자녀 장학금 지원, 보일러 교체, 도배 등 주거환경 개선 지원방안도 있다. 정기적 방문을 통해 조부모의 어려움을 듣고, 부모의 정이 그리운 아이들에게 지속적인 관심을 갖는 정서지원도 교회가 담당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벌써 발빠른 지원에 나선 교회들이 있다. 인천 새빛교회(신상범 목사)는 2003년부터 조손가정, 한부모가정 아이들을 위한 홈스쿨을 열고 있다. 가정형편상 학원에 다니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교회공부방을 열고 영어 수학은 물론 컴퓨터, 독서토론, 피아노, 논술 등을 무료로 가르치며 돌봄을 실천하고 있다. 청주서원교회(송성웅 목사)는 올해부터 지역사회 어려운 가정의 학생들을 위해 급식비 지원을 시작했다. 송성웅 목사는 “지역 내 조손가정 등의 아이들에게 지속적인 관심과 사랑을 전하는 첫 걸음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교세확장과 해외선교도 중요하지만 우리 주위에서 가난과 무관심에 스러져가는 조손가정들에게 희망을 전하는 것도 교회의 몫임이 분명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