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의 자기관리는 너무나 당연하게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쉽지 않다. 이유는 그렇게 잘하지 않아도 별문제가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성도들도 잘 모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 지속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속되지 못한다 함은 한 만큼 얻는 것이 확실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목회자의 자기관리는 다시 시작되어야 한다 어떻게 다시 시작할 것인가?
첫째로 목표가 있어야 한다. 다른 사람을 관리하는 것은 쉽다. 그런데 나를 내가 관리하는 것은 어렵다. 이 어려운 일을 만들어 내기 위하여 목표가 필요한 것이다.
체중조절 즉, 다이어트가 매번 실패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방법의 문제가 아니다. 무슨 방법을 써도 다이어트, 체중 조절된다. 다만 목표가 분명하지 않아 실패하는 것이다. 체중 조절 살빼기의 목표를 예쁜 옷을 입기 위해서나 몸무게에 두면 백번 실패한다. 그러나 남에게 보이려는 일에 두면 성공한다.
목회자의 자기관리 목표는 본이 되는 일이다. 사도 바울이 자신을 본받는 자가 되라 하였다. 바울이 모든 것을 다 이루어 놓고 한 말이었을까 그가 푯대를 향하여 달려간다는 것과 같이 목표를 제시한 것은 아닐까. 목회자는 본이 되어야 한다. 성도들의 본이 되어야 한다. 본이 되려면 말에나 행동에, 신앙에도 절제와 예의와 품격이 따라야 한다. 하고 싶은 대로, 살고 싶은 대로 못한다는 말이다. 여기에 자기관리가 이루어진다. 본이 되어야 하기에 성도들에게 말이 아니라 보여야 하기에 말에도 행동에도 삶에도 영성에도 자기관리가 된다.
본이 되는 것은 보여주는 일만이 아니다. 보여 주는 것은 따라오는 일이다. 본이 되려고 하는 일에 목회자로 서게 되는 길이 있다. 목회자의 사명감과 자부심과 당당함의 회복이 여기에 있다. 목회자는 부끄러운 사람이 아니다. 본이 되는 사람이다. 본이 되려는 목표가 분명할수록 자기관리도 이어져 갈 것이다. 직분자들에게 본이 되자. 그리고 세상에도 본이 되자. 너희는 세상의 빛이요 소금이라 하지 않으셨는가. 바울은 나중에 주를 믿어 영생 얻을 자들에게 본이 되는 일이 자기 일이라 하였다. 자기관리는 어렵지 않다. 목표만 분명하면 된다.
둘째로 애정이 필요하다. 좋아해야 한다는 말이다. 자기관리하는 일이 책임과 의무만으로는 되지 않는다. 모든 병에 약만큼 권하는 것이 운동이다. 운동을 이해로 지속할 수 없다.
의무로 책임으로 물론 안 된다. 운동을 좋아해야 한다. 목회자의 자기관리에 많은 방법이 있다. 고전적인 방법부터 개인적인 방법까지 다양할 것이다. 독서, 좋은 방법 아닌가. 그런데 안 된다. 애정이 없어서이다. 아무리 좋은 방법이라 해도, 좋은 책이 있다 해도 애정이 없으면 오래 가지 못한다. 애정은 자기만의 기쁨이다. 남들의 평가는 중요치 않다. 바울이 스스로 자족하는 법을 배웠다 하지 않았는가. 책을 읽어서 얻는 것만큼 누려야 할 일이 있다. 독서 자체를 기뻐하는 일이다. 스스로 만족하는 일이다. 이것이 애정이다.
자기관리를 통해 얻으려는 것에 초점을 맞추면 힘들어진다. 목회자가 자기관리를 잘했다고 해서 설교가 발전할 리가 없다. 여전히 부족할 수 있다. 그런데 성도들이 목회자의 설교를 소중히 여기게 된다. 하나님 말씀에 귀기울이게 된다. 목회자가 설교를 다시 귀하게 대하게 된다. 무엇이 더 필요하겠는가 목회자의 자기관리는 목회자가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가게 하는 선물이다. 그리고 목회자의 자리를 지키게 하는 특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