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 27:27~32)

교회는 세상에서 가장 신비한 곳이다. 교회는 주님의 몸이고 그 몸의 머리는 예수이시며 성도들이 각 지체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회는 아주 중요한 속성을 갖고 있는데 바로 공동체성이다. 뿐만 아니라 교회는 공동체성과 달리 개체성도 동시에 갖고 있는 곳이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신령한 선물을 주셨고 그 신령한 선물을 따라 각 지체로서의 고유한 위치와 역할을 감당하게 하셨다. 그렇지만 개체성이 공동체성을 넘어설 수 없다. 즉 공동체성 안에 개체성이 유지되는 것이다.

그만큼 교회의 공동체성은 아주 중요하다. 이 공동체성이 유지되지 못하면 교회는 존립에 큰 위협을 받을 수밖에 없다. 고린도 교회가 심각한 위기 가운데 있었던 이유는 파벌싸움이 컸기 때문이다. 신령한 은사가 넘쳐났지만 그들은 서로 분당을 결성해서 다투고 있었다. 이것은 결국 교회 공동체성을 위협하는 것이다. 

바울이 황제에게 상소함으로써 로마로 가게 되었다. 그런데 그 여정길이 순탄하지 못했다. 유라굴로라는 대풍을 만나 보름이 지나는 동안 그들은 폭풍에 시달려서 아무것도 먹지 못한 상태에 놓이기까지 했다. 그런데 육지가 가까워 온다는 것을 알았다. 그 얼마나 희망이, 안심이 되겠는가? 그런데 배 안에서 이상한 움직임이 포착되었다. 선원들이 배를 버리고 도망하려고 배에 매어 놓았던 거룻배를 풀어 바다에 띄운 것이다.

이것을 바울 사도가 알아차리고 백부장에서 알려서 밧줄을 끊고 거룻배를 떨어뜨렸다. 당시 배들이 거룻배를 갖고 다닌 이유는 항구가 잘 발달되어 있지 않아 배를 정박할 때 어려움이 매우 커서 거룻배를 사용한 것이다. 선원들이 이 거룻배를 이용해 도망가려고 했던 것이다. 자기들만 살고자 했던 걸까?

오늘날에도 이 거룻배가 교회 안에도 있다고 본다. 많은 사람들을 안전하게 항구로 인도할 거룻배들이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그렇게만 사용되고 있을까? 어떤 사람들은 그 거룻배를 호시탐탐 노리고 기회만 되면 거룻배를 집어타고 교회 밖으로 도망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다른 성도들은 어떻게 되든 말든 상관하지 않고 떠나가는 것이다.

오늘 내가 섬기는 교회 안에는 거룻배가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가?
그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다. 내가 지금 교회에 대해서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는가에 따라 거룻배의 용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오늘날 교회 안에 어떤 사람들은 거룻배를 훔쳐 타고 교회 밖으로 도망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주님 몸인 교회가 힘들고 어렵고 고통당하며 위기를 맞이하고 또 좋지 않은 일들이 벌어질 때 기회는 이 때다 하고 거룻배를 몰래 내리고 몇몇 동지들을 모아 도망치는 것이다.

주의 인도하심과 성령의 감동하심을 따라 교회와 한 몸 되게 하셨는데 이 은혜가 얼마나 크고 놀라운가? 그러나 오늘날에는 너무나 쉽게 깨어져 나가고 있다. 거룻배를 살펴보시라.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가? 또 어떻게 사용하려고 하는가? 아예 거룻배를 타고 따로 움직이는 것은 아닌가? 처음부터 은밀하게 거룻배 따로 준비해 놓고 교회 다니고 있는 것은 아닌가? 주님과 한 몸 됨을 위협하는 거룻배, 교회 공동체성을 위협하는 거룻배라고 하면 지체하지 말고 지금 끊어 버리시라.

훗날 죽어 하나님 앞에 섰을 때 2000년대 한국교회에서 신앙생활했다고 하면 이것 먼저 확인하실 것이라고 생각이 들지 않는가? ‘교회 공동체성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참고 견디고 인내했는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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