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 27:13~26)

목적한 바를 이루기 위해 첫 시작을 할 때 좋은 기회를 찾거나 좋은 타이밍을 기다린다. 어떤 사람들은 처음 시작이 어떠한가에 따라서 성패를 미리 결정하려고 하는 경향도 갖고 있다. 이런 사람들에게 처음 시작이 어떠한가는 정말 민감한 문제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처음 출발이 좋으면 결과가 다 좋은가? 꼭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리다. 왜냐하면 예측할 수 없는 변수들이 수도 없이 많기 때문이다. 아무리 철저하게 계획을 해도 변수가 너무나 많이 있기 때문에 성공적인 결과를 보장하기 어렵다.

바울이 오순절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갔다가 아시아에서 온 유대인들로부터 오해를 받아 고발 당했다. 재판을 받지만 상황은 점점 불리해져 갔다. 이런 상황을 해결할 유일한 방법으로 로마 황제에게 항소하여서 로마로 가게 되었는데 배를 이용해서 가게 되었다.

무슨 이유로 배편을 이용하게 되었는지 확실치 않지만 로마로 갈 수 있는 여러 방법 중 배로 가는 편이 가장 좋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시기적으로 배를 이용해서 이동하는 것은 무리였다. 그때는 시기적으로 폭풍이 부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울은 항해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그렇지만 선주와 선장은 그런 바울의 경고를 무시하고 출발하기로 했다.

그런 결정을 하게 된 또 다른 이유는 ‘아름다운 항구(미항)’가 겨울을 나기에 적합한 곳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배에 타고 있던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곳을 떠나 뵈닉스로 가기로 했다. 그러니까 출항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바울을 비롯해서 그와 함께 하는 사람들 뿐, 다른 모든 사람들이 찬성을 한 것이다.

276명이 승선해 있었으니까 바울의 의견은 숫적으로 밀릴 수밖에 없다. 거기다가 그들의 생각과 주장이 옳다고 손을 들어주는 듯이 바람까지 순풍이 불어주었다. 출항하기로 한 사람들은 얼마나 신이 났을까? 출항하기에 더없이 좋은 타이밍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그곳을 기분 좋게 떠났다. 그런데 얼마가지 않아서 그 좋던 순풍이 유라굴로라는 폭풍으로 변했다. 이 태풍이 불어 이후 엄청난 고통과 위기를 겪고 말았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절망 속에 빠지고 말았다.

목표한 것을 이루기 위해 첫 시작을 하면서 폭풍 속으로 들어가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누구나 순풍이 불기를 바란다. 그리고 기회를 찾다가 순풍이 불 때 재빨리 시작을 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언제 순풍이 불겠느냐이다.

사람은 순풍과 폭풍을 교대로 맞으면서 사는 존재이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성도는 순풍이 불거나 폭풍이 불거나 어떤 상황이든지 믿고 확신하고 있는 것들이 변하거나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바울은 로마로 가기 전부터 확신 한 가지를 갖고 있었다. 그것은 주님의 계획과 뜻대로 로마에 갈 것이라는 믿음이다.

겉으로 보면 첫 출발은 좋았다. 순풍이 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것이 잘 풀린다 싶었는데 얼마가지 않아서 폭풍이 불어 다 죽게 되었다. 이때 바울에게서 찾아 볼 수 있는 모습은 여전히 그 확신 가운데 있다는 것이다. 폭풍속에서 살아남을 가능성이 조금도 없어 보이는 가운데서도 그는 여전히 로마 황제 앞에 설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왜냐하면 주께서 그렇게 될 것이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순풍이 불든지 폭풍이 불든지간에 주님이 세우신 뜻과 계획은 결코 바뀌거나 변하지 않는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이다. 순풍이 불 때나 폭풍이 불 때 쉽게 변질되고 또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도는 순풍이 불든지 폭풍이 불든지 믿고 확신하는 것을 끝까지 붙들어야 한다.

순풍 가운데 있는가? 아니면 폭풍 가운데 있는가? 지금까지 믿고 확신했던 것을 끝까지 굳게 붙잡자. 주께서 약속하신 것이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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