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의 구약성서신학분야에서 큰 발자취를 남긴 김정준 목사가 어느 날 미국의 대학 채플에서 설교를 맡았다. 설교를 마치고 강단을 내려오는데 어느 교수가 다가와 그의 손을 덥썩 잡더니, “당신의 설교를 엔조이(enjoy)할 수 있게 해줘서 고맙다”라고 말했다. 문화의 차이인지도 모르지만, 설교를 엔조이했다는 말에 혹여 설교를 잘못한 것인가 잠시 어리둥절했었다고 소회를 밝힌 적이 있다.

▨… 우리 기독교(프로테스탄트)의 예배는 설교가 중심이다. 그러므로 설교를 잘 하느냐 못하느냐는 목회자 청빙의 절대적 요건이 되기도 한다. 대부분의 교회가 청빙을 결정할 때 설교 테잎을 요청하거나 설교를 직접 들어보기 위해서 장로나 집사들을 파견한다. 어쩌면 목회자로 살아온 삶의 이력이나 인격보다 설교의 평가가 청빙의 우선 조건이 되는 셈이다. 이것이 한국교회의 현실이며 우리교단도 별반 다를 바 없다.

▨… 잘 하는 설교와 잘못하는 설교를 판단하는 기준은 도대체 무엇일까. 설교를 비평하기는 무엇보다 힘든 일인데 이 일에 뛰어든 우리교단의 정용섭 목사는 한국교회 설교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점은 “설교자들이 성서 텍스트에 관심이 없다는 것과 또 성서 텍스트가 해석되지 않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에 의하면 성서 텍스트 해석에의 충실함이 설교의 기본적 조건이라는 것이다.

▨… ‘성서 텍스트 해석’이 주석을 통한 내용파악으로만 국한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텍스트 안에 내재되어 있는 진리를 삶의 정황 안에서 재해석하는 일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그 성서 텍스트 해석은 성서연구일 수는 있어도 설교가 될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일은 책으로 해결될 수 있는 일이 아니기에 많은 목사들이 머리를 싸매며 힘들어 한다.

▨… 대낮에 호롱불을 켰던 디오게네스에게 누군가가 물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 무엇인가라고, 그는 ‘솔직한 말’이라고 대답했다. 삶이 솔직하지 못하다면 솔직한 말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이 진리라면 사람은 애초부터 아름다울 수 없는 존재아니겠는가. 이 숙명 앞에서 ‘은혜의 설교’에 도전하는 목회자의 외로움을 우리 주님만은 알아주실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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