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학교의 선구자 강치봉 ⑤종교교육관과 번역자의 풍모

강치봉이 활천에 쓴 ‘하기 아동 성경학교를 마치고’를 계속 살펴보자. 그는 아동 구령사역에 임하게 된 동기와 소신에 대해 셋째로 조선에 대한 주의 진노의 음성을 들은 까닭이라고 말한다.

“너희 조선교회가 초시대(初時代)에 나를 사모하기를 그 생명보다 나의 이름을 위하여 순교하는 자 적지 않더니 이제 나를 따르는 자 수, 날로 감축하는 바 있으니 이는 어찜인고? 삼가 소돔과 고모라의 화를 피할지어다.” 이 무서운 벼락같은 주의 책망을 들은 것입니다. “10년 전인 1920년 이 땅에 기독교인이 31만9천이더니 최근에 와서는 1만3천인이 줄어 30만6천밖에는 아니 됩니다. … 왜 이렇게 부진하는 중에 있습니까? 그것은 믿는 자가 냉각하여지고 부패하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과연 조선교회의 신앙은 날로 부패하여 갑니다. 부패한 병든 신앙의 구습을 벗어버리고 새 신앙 새 열심에 불타게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2천만 동포를 모조리 주께 인도하려는 첫걸음으로 요구가 많고 감화력이 빠른 아이들에게 손을 뻗치게 된 것입니다. 죄악에 감염되지 않은 어린이 영혼들을 주의 진리로 교육하는 일은 하나님의 지극히 기뻐하시는 바입니다.”

그는 이 글의 끝에서 성결교회가 아동 구령사업에 유의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밝힌다. 그래서 아동구령부 혹은 주일학교부를 상설기관으로 설치하여 제기되는 저간(這間)의 문제들을 심각히 연구하였으면 하는 희망을 ‘우리단체 일반 주일학교 직원들은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강치봉은 당대 영문번역자로의 모습도 보여준다.
1934년 6월 중순 영국 런던에서 이명직 목사에게 한 통의 봉서(封書)가 왔다. 그 내용물은 캐나다 영국령 컬럼비아 주 밴쿠버 시에서 간행되는 ‘데일리 프로빈스’ 지로서 그곳 사회주의의 반종교선언과 이에 대한 교회의 성명과 답변이 게재되어 있었다. 활천에는 이 내용이 정리되어 게재되었는데 ‘마역(魔役)이 극도로 팽창한 말세에 처하여 주를 위하여 성전(聖戰)하는 십자가의 투사는 모름지기 이 사실을 알고 각성하는 바 있어 이에 그 내용의 대요를 소개하라는 이명직 목사의 부탁에 의하여 졸필을 들었다’고 밝히고 있다.

당시 영국령 캐나다의 컬럼비아 주의원 선거 시에 사회당 후보자들은 종교를 가르치는데 전부가 허위인 동시에 이것은 자라나는 제2세 국민에게 가르치는 것은 아동의 덕육과 미래의 도덕적 복리에 일대치명상을 주는 위험성이 있다하여, 만일 자기네들이 주의원으로 피선만 되면 종교교육을 전면 폐지하겠다고 선포하였다.

이에 대하여 ‘학부형을 대신하여’라는 제목으로 종교교육의 필요를 역설하여 반박의 성명서를 그들에게 보낸 바 있으니 그는 카리부 영국성공회주교 ‘아담스’ 씨였다. 이 주교에게 보내어 그 반종교 교육운동에 대한 이유와 입장을 밝히려 하였다. 그 성명서의 내용을 성결교단 지도자이며 성서학원의 원장이고 활천의 편집인인 이명직 목사의 부탁을 받은 강치봉이 번역하여 그 대요를 정리해서 ‘활천’지에 실었다.

이로 미루어 강치봉은 당시 성결교회에서 몇 안 되는 영문번역자임을 알 수 있다. 또한 강치봉 집사가 활천에 기고한 시나 논설 번역문을 보면 그는 문학적 소양을 갖춘 시인이며 문필가임을 알 수 있다. 그의 시가 ‘활천’에 4편이 실려 있다. ‘신앙은 나의 것’ ‘추구’ ‘주를 따라 가리다’ ‘섣달의 설음’ 등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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