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피쉬-끝없는 여정'

 

지중해의 5월 이탈리아 산 피에트로 섬, 참치 잡이 어부들이 그들의 대장-라이스의 지휘아래 그물 손질이 한창이다. 세찬 해풍에 검게 그을린 사내의 얼굴을 비집고 나온 턱수염은 곧 있을 결전을 말해주듯 단호하다.
하늘에서 바라 본 코발트빛 지중해 바다 한 가운데에 생선의 뼈와 같은 모습의 여덟 개의 방을 가진 그물이 길게 드리워져있다. 그물 밑 짙푸른 바다 속, 무리 진 커다란 다랑어 떼의 황금빛 지느러미는 햇빛에 반사 된 은빛 몸통과 대조를 이룬다. 그들은 물결처럼 유유히 흘러 몰이꾼 잠수부를 피해 한 곳으로 향한다. 조만간 닥칠 최후의 운명을 알지 못한 채.

다시 수중 카메라가 앙각으로 고개를 쳐 들면 그물에 갇힌 물고기 떼 위로 아른 거리는 어부들이 이내 가깝게 다가온다. 여덟 개의 방을 지나 최후의 문인 죽음의 방에 이른다. 수천 킬로를 이동해 자신들의 고향으로 향하던 참치 떼들은 마지막을 직감 한 듯, 이 여행의 최종 목적인 산란을 위해 자신의 알들을 마구 뿌린다. 참치는 커다란 눈으로 이를 바라보고 비장한 표정의 사람은 물고기의 고통을 덜어주기라도 하듯 재빠르게 그의 심장을 찌른다.

새로운 생명의 탄생과 죽음이 교차한 이 핏빛 붉은 축제, ‘마탄자’는 삼천 년 전 고대 로마에서부터 지중해로 내려온 사람을 살리는 피의 제전이다. “바다, 하늘, 피 이것은 생명이 순환되는 이치입니다. 물고기의 죽음이 인간들에게 생명을 선사합니다.” 어부들의 라이스(리더) ‘루이지 비죠’는 말한다. 바꿔 말하면 곧 신이 창조한 질서의 한 단면이다.

‘슈퍼피쉬-끝없는 여정’은 ‘생로병사의 비밀’을 연출한 KBS 교양문화국 송웅달 감독이 약 3년여 걸쳐 만든 전체 5부작 다큐멘터리를 극장용으로 재편집, 3D 변환 작업을 걸쳐 개봉한 작품이다.
인간과 물고기, 선사 시대 이전부터 이어져 온 둘의 인연을 담았던 5부작 다큐멘터리를 물고기와 함께 다양한 자연환경 속에서 현재를 살아가는 세계 각지의 사람들의 삶의 양식에 초점을 맞춰 극장용으로 압축했다.
일반적으로 다큐멘터리를 구성하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보인다. 인터뷰가 주를 이루며 사건이나 기록화면을 중간에 삽입하는 방식이 하나라면, 캐릭터를 구축해 이야기로 스토리텔링 하는 방법이 나머지다. 전자는 주로 정보를 전달하는 측면이 강하고 후자는 인간의 감성에 직접 소구함으로써 극에 적극적으로 몰입하게 한다.

‘슈퍼피쉬-끝없는 여정’은 이 두 가지 모두를 아주 조화롭게 소화하고 있다. 그 축을 담당하는 아주 훌륭한 캐릭터는 사람과 물고기, 사람과 자연이다. 특히나 ‘마탄자’ 장면에서 커다란 눈의 참치와 같이 살아 있는 생생한 감성을 그대로 전달하는 도구로 쓰인 풀 HD 카메라와 수중 고속 카메라, 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세상에서 가장 거친 물살의 메콩 강과 어부의 모습을 포착한 타임 슬라이스 시스템(영화 ‘매트릭스’에서 주인공이 총알을 피하는 장면에 쓰인 화면 기법)은 관객의 감성을 극대화 시켜 뇌리에 각인시키는 효과를 가져온다. 그 결과가 2013 휴스턴국제영화제 다큐멘터리부문 대상 수상으로 이어졌다.

기독교와 물고기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우리는 이 다큐멘터리 5부작 중 4편 ‘금요일의 물고기’ 편을 주목해야 한다. 기독교를 공식적으로 인정한 밀라노 칙령(A.D.313) 이전, 순교자들의 무덤인 ‘산 칼리스토 카타콤베’에는 물고기 문양이 대리석에 조각되어있다. 물고기는 헬라어로 익투스(IXqYe)이다. 이는 각각 예수(Ihsous), 그리스도(Xpistos), 하나님(qeos), 아들(Yios), 구세주(ewthp)를 뜻하는 첫 머리글자를 따서 만든 단어이다. 즉 물고기는 성체(예수)를 상징했고 물고기를 먹는 행위는 예수와 하나 됨을 의미했다. 물고기에 대한 기독교적 의미를 되돌아본 ‘슈퍼 피쉬’ 4편 ‘금요일의 물고기’는 그 가치를 인정받아 한국기독언론인연합회가 주최하는 제4회 한국기독언론대상에서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조현기 프로그래머는
전북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영화 ‘누나’ 프로듀서, 2005년부터 2013년까지 서울국제사랑영화제 프로그래머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복합문화공간 필름포럼의 수석 프로그래머로 활약 중이다.

저작권자 © 한국성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