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을 뜨면 새날을 주신 분에게 감사 기도를 드린다. 미당은 아침마다 1천625개의 산과 각 나라의 수도를 외웠다고 한다. 말년에 기억감퇴를 막기 위해서였다. 닮으려고 한 것은 아니지만 나 역시 오래 전부터 매일 성경 구절을 암송하고 있다. 100여개나 되는 길고 짧은 문장의 성경을 다 외우려면 30분 이상이 걸린다.

성경의 문장 특색은 깔끔함에 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성경 구절이 주는 감동과 심오함이다. 암송하는 성경 구절이 늘어나는 만큼 외우는 시간도 길어진다. 줄곧 외어 온 순서대로 성경을 암송하면 막힘이 없이 줄줄 나오지만 정신이 집중되지 않으면 성경의 글귀나 장·절을 까먹을 때도 종종 있다. 그 같은 오류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 매일같이 반복해서 외우는 것이다.

고금의 세계 문호들이 성경의 문학적 예술성을 극찬했지만 두꺼운 성경 곳곳에는 범인이 넘지 못할 문학적 표현들이 알알이 담겨 있다. 성경을 암송해 오면서 사안을 보는 눈이 점점 달라지고 있음을 느낄 때가 있다.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사고로의 발전이다. 빼 놓을 수 없는 것은 나이든 사람들이 갖기 어려운 로망이 아직도 내게 있다는 것이다. 엄습해 오는 나이의 무료함을 벗어나 뭔가 하고 싶은 일을 꾸준히 찾고 있는 것이다.

40여년의 공직생활을 마친 후 지금까지 지내오면서 오늘은 무엇을 하면서 보낼까하는 생각을 가져본 적이 없다. 퇴직한지가 10년이 다 되었지만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매주 한 번씩 대학에 출강하여 강의를 한다. 손자 손녀 같은 아이들과 호흡을 같이하면서 전공과 경험을 곁들인 강의를 할 때는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그만한 열정이 아직도 남아 있다는 사실에 나도 놀란다. 전공에만 매달려 있는 학생들의 좁은 시야를 넓혀주려고 애쓴다. 재미있고 짧은 내용의 영어문장을 프린트하여 나줘 주고 읽고 풀어가면서 영어에 관심을 유도하는 일도 한다. 이렇게 하면 3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단정히 옷을 입는 등 자기관리를 옛 그대로 하고 있는 것도 대학 출강의 부수적인 효과다.

평생 쉼 없이 일을 해 왔지만 지금도 나는 일을 자꾸 만들어 간다. 인간관계의 폭이 정상적인 직장생활을 할 때보다 줄지 않았다.

음악을 좋아하다 보니 대구극동방송국의 남성합창단원이 되었다. 60여명의 합창 단원 중 나이가 제일 많다. 젊은이들과 한데 어울려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 리허설을 하고 무대에 설 때면 카타르시스가 온 몸에 스며든다.

무엇보다 내 생활에 변화를 가져다 준 것은 수필 문학이다. 계속 글을 써 왔지만 내 글을 평가받을 기회가 없었다. 등단 이후 수필 문우들과의 교감이 내 늦은 삶에 많은 에너지를 주고 있다. 무언가 추구하고 그것을 글로 표현하는 창작의 기쁨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은 청량제에 버금간다.

수필집에 실린 내 작품을 보는 남다른 즐거움도 있다. 가끔 있는 구청 행정의 자문 역할도 나의 존재감을 일깨워 주는 좋은 수단이다. 나의 이름을 잊지 않고 찾아준다는 것은 아직도 내가 생동하고 있다는 확실한 증거다. 이런 일들을 하다보면 한 주일이 훌쩍 지나간다.

나이 70은 시속 70㎞라는 등식이 아직 내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내가 하는 일들은 돈과는 무관하다. 젊은이들이 갖는 로망에는 못 미치겠지만 나이 의식 않고 마냥 지금처럼 살고 싶다. 나는 소일(消日)을 하지 않고 작일(作日)을 한다. 매일 암송하고 있는 성경의 값진 구절들이 그렇게 하라고 가르쳐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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