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이 자기의 비극적인 처지를 못 느낀다면 그건 바로 짐승이야. 하긴 그런 사람들이 없지는 않고, 그런 사람일수록 요즘 세상은 살기 좋은 곳이라 여기고 있겠지만 그런 놈은 분명히 옳은 사람은 아니란 말이야. 사람은 지위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우리의 비극적인 상황을 더 또렷이 생생하게 느껴야 하는거야. 높아진다는 건 출세가 아니라 남북 분단의 비극에 한 걸음 접근해 간다는 뜻이야.”

▨… 소설가 윤정규는 “산타클로스는 언제 죽었나”에서, 아내와 세 딸을 북쪽에 남겨둔 채 아들만 데리고 월남한 노인을 등장시켜 ‘살기 좋은 곳’에 안주하려고만 하는 아들을 향해 직격탄을 날리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기는 요즘의 젊은 세대 사이에선 핵폭탄을 만들고 미사일을 쏘아대는 북쪽을 우리가 왜 도와야 하며, 그 지지리도 못 사는 사람들과의 통일을 굳이 할 필요가 있느냐는 질문이 팽배해져가고 있다.

▨… 6.25사변인지 동란인지, 남북전쟁인지 한국전쟁인지, 아직 개념도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민족상잔의 비극이 일어난지 63년째다. 그 비극을 몸으로 직접 겪으며 감당한 세대들은 차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북쪽에 고향을 둔 사람들은 그리움을 화석처럼 가슴에 묻는 데에 익숙해지고 있다. 등 돌리고 차라리 남남으로 살자는 말에도 익숙해지면서.

▨… “남북한은 서신, 방문 등이 두절된 가장 멀고 이질적인 나라가 되어버렸다. 따라서 남북한 국민들은 동족의 생활과 문화에 대하여 서로 무지할 뿐만 아니라 서로 알아서는 안 되는 관계로까지 길들여져 왔다. 양 체제는 같은 피를 나눈 동족을 가장 무서운 원수로 인식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기독교회 선언) 아무도 이 선언이 지적하는 내용을 부정하지는 못하리라.

▨… 북한 선교는, 우리교단에서는 ‘강 건너 불’이나 다름없다. 교회를 세울 수 없는데 무슨 선교가 가능하겠느냐는 선에 머물러만 있는 것이다. 평화가 통일을 위한 과정인 동시에 선교를 위한 과정이요 방법이며 수단이라는 사실은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그 평화를 위해 화해의 제물이 필요하다면, 누가 나서야겠는가? 북한 선교를 위해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묻는 일은 우리 교단에선 불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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