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가장 존귀한 존재라는 것은 동서양 모두에서 강조됩니다. 그러나 성경은 사람이 존귀하다는 것을 이보다 더 많이 강조합니다. 창세기 1장 27절에 보면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고 했습니다.
창세기 2장 7절 이하에 하나님께서 사람의 코에 하나님의 숨결을 불어넣으셨습니다. 그러자 이 사람이 ‘생령’이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사람 속에는 영원한 하나님의 생명이 존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영성입니다.
그러나 이 하나님의 형상은 인간이 죄를 범함으로 다 잃어버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셔서 죽음으로 인간의 죄 값을 다 치루시고, 부활하심으로 영원한 생명을 다시 찾아주셨습니다. 그리고 성령을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하늘로 올라가실 때, 즉 최후의 순간에도 성령을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성령께서 오순절 날에 내려오셨습니다. 이 성령은 모든 믿는 사람들에게 다 주어졌습니다. 인간이 하나님과 다시 연합하는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제 인간은 하나님이 가지고 계신 그 생명을 소유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반드시 성령을 받아야 하고, 받아도 아주 가득하게 받아야 합니다. 우리 속에는 성령으로만 가득하게 해야 합니다. 이것이 ‘성령 충만’입니다. 그러면 성령이 충만한 것은 무엇으로 알 수 있을까요?
첫 번째는 정체성으로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정체성이란, 예수님의 성품을 얼마나 가지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만큼 성령 충만한 분이 없거든요! 마태복음 11장 29절에 “나는 온유하고 겸손하다”고 하셨습니다. 또 마태복음 20장 28절에도 있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울은 빌립보서 2장 5절에서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에 나타난 예수님의 마음은 자기를 종의 모습으로 낮추고, 죽는 것까지도 복종하신 마음입니다. 그러니까 마음속에 그리스도의 마음으로만 채워져 있으면 정체성이 확실한 사람이지만, 그리스도의 마음과 더불어 세속적 욕망도 함께 들어있다면 정체성이 불확실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두 번째는, 성취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좋은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고 나쁜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는다’고 하셨습니다(마 7:17).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고도 하셨습니다(마 7:20). 바울은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고 했습니다(고전 4:20). 따라서 성령 충만한 사람의 성취는 성령의 열매를 얼마나 맺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육체의 소욕 즉 자기과시, 교만, 거짓, 시기심, 미움, 폭력, 탐심, 방탕한 마음 등을 거스르며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았느냐는 것입니다.
더 직접적으로 말하자면, 얼마나 법과 양심을 잘 지켰느냐는 것입니다. ‘세례인 수를 속이지 않았느냐, 총회비를 속이지 않았느냐, 부정선거를 안 했느냐입니다.’ 자기중심적이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과 이웃의 유익을 먼저 생각했느냐는 말입니다.
여기서 중요하게 생각할 점이 있습니다. 자기에게 부정적인 모습이 아직도 남아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자세입니다. 이것을 인정하는 사람은 성령께서 회개의 자리로 인도하십니다.
세 번째는, 평판입니다. 다른 사람이 나에 대해 좋게 말할 수도 있고, 나쁘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나에 대한 평판입니다. 구약 성경에는 선지자들이 왕에 대해서, 또는 국민들을 향해서 죄를 지적하고 회개를 촉구하는가 하면, 복과 희망을 약속하는 모습이 많이 나옵니다. 이것은 모두 선지자의 눈에 비쳐진 그들의 모습에 대한 평판입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언제나 좋은 평판을 받았습니다. 초대교회의 일곱 집사들도 모두 좋은 평판을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성령이 충만하지 못한 사람은 언제나 좋은 평판을 받지 못했습니다. 지금 우리들도 그렇습니다. 좋은 평판을 받는 사람이 성령 충만한 사람입니다. 교회 지도자들은 더욱 그렇습니다.
네 번째는, 수용입니다. 이것은 평판에 대한 수용입니다. 평판은 투영된 자아의 모습을 보여주는 거울과 같습니다. 만일 이런 평판이 없다면 우리는 자신의 강점과 약점을 발견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평판에 대한 수용은 자기개선과 자기발전에 대한 좋은 기회가 됩니다. 강점을 발전시키고 약점을 보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죄를 회개하고, 성령을 따라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성령을 충만하게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늘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누구에게서든지 좋은 평판 즉 칭찬만 받으시기 바랍니다. 마귀만 빼놓고, 하나님과 모든 사람에게서 칭찬을 받으며 사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