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음 주간이면 총회가 열린다. 무슨 계절의 순환처럼 어김없이 때는 찼고 총회는 막을 올리게 된 것이다. 제107년차 총회, 그러나 성결인들의 눈에서는 그 총회를 맞는 아무런 감흥도, 설렘도, 기대도 발견할 수가 없다.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겠느냐‘는 식의 자조가 오히려 넘쳐나고 있을 뿐이다. 해마다 봄철이면 몸이 가려워지는 앨러지 증상을 겪는 환자처럼 무덤덤해지고 있다.

▨… 왜일까? 해마다 총회가 내놓는 유일한 ‘메뉴’는 부총회장 선거를 위한 투표밖에는 없기 때문이다. 교인 수가 줄고, 헌금이 줄고, 아무도 관심가져 주지 않는 교회의 막막한 현실을, 정말 십자가를 향한 믿음만으로 극복해낼 수 있을까 하는 조바심에 꿇은 무릎이 펴지지 않는 마당인데, 그래도 ‘떡해 먹어야 할 세상’인가 선택받은 이들은 투표가 끝나면 언제나 할 일 다했다는 표정이 된다.

▨… 어차피 총회가 투표놀이로만 그쳐버릴 것이라면 그 투표라도 바른 정신 속에서 이뤄져야 한다. 돈 봉투가 오가서 한 표를 던지는 일이야 없겠지만, 지연이나 학연, 한 자리 얻을 수 있을까 하는 또는 이미 얻은 기득권을 지키려는 사심 때문에 한 표를 던지는 일도 없어야 한다.

▨… 교단의 내일이 당신의 한 표에 달려 있다는 표현은 너무 거창하게 과장된 것이라고 웃어버려도 무방한가. 총회장깜 선거가 아무리 교단내에서 가장 성령이 충만한 사람, 인격이 고결한 사람, 존경할 만한 사람을 뽑는 콘테스트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마땅히 당선될만한 사람이 뽑힌다는 것은 성결인의 자존심이다. 신앙적 양심이다. 교단이 미증유의 혼란을 겪고 있는 만큼 총회 대의원들의 심사숙고가 그 어느 총회때보다 특별하게 요청된다.

▨… 우리 교단의 진정한 문제는 무엇인가. 우리 교단의 미래에 대한 청사진은 있는가. 우리 교단을 이끌어갈 지도자로서 자신을 희생할 각오는 되어 있는가, 또 그렇게 살아왔는가. 지도자가 되겠다고 하는 이들에게 냉철하게 현미경을 들이대고 투표하자.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는 자신의 생전 묘비명에 이렇게 썼었다. “우물쭈물 하다가 이럴 줄 알았다.” 교단이 파국에 이르고서야 쇼를 떠올린다면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 아니겠는가. 교단은 하나님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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