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와 즐거운 소리가 계속되도록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이스라엘과 주변지역에서 포도주는 마치 음료처럼 취급되고 있다. 고고학은 이 지역에서 포도재배가 기원되었다는 사실을 증명했으며 현재 터키 지역 노아의 아라랏산으로 추정되는 지역 주변에서 주전 3천년 경에 이미 포도주를 짠 장소가 발견된 바 있다. 고대 이 지역의 포도주는 질 좋은 것으로 앗수르와 이집트에도 수출한 사실 또한 고대 문헌과 벽화 등을 통해 발견되었다.

앗수르와 이집트는 이스라엘과 상당히 유사한 기후와 지형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이스라엘보다 더 덥고 건조한 기후는 포도를 재배하는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이집트는 적은 양의 포도주만을 생산할 수 있었으며 포도주의 질은 이스라엘만큼 좋지는 않았다.

포도주의 또 다른 특징은 석회석이 많은 근동지역의 물을 희석시키는데 도움이 되는 중요한 음료중 하나로서 고대부터 현대까지 매일의 식탁에 항상 오르내리는 음료이다. 덕분에 이스라엘은 성서시대 주변 국가들에 많은 양의 포도주를 제공했고 이스라엘의 경제에 포도 생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히 컸다. 

포도는 보통 8~9월에 수확하여 암반을 편평하게 넓게 판 장소에 담고 발로 밟았다. 현대 팔레스타인에서는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고대의 방식대로 발로 밟아 포도즙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이렇게 해서 생긴 포도즙은 암반의 다른 끝에 있는 작은 구멍으로 흘러 옆에 있는 통에 모이게 되어 있다.

포도를 밟을 때는 가족의 전 구성원이 참석했고 기쁨과 환희의 연회가 베풀어졌다. 풍성한 포도 수확을 기뻐하며 포도를 발로 밟을 때, 저절로 노래가 흘러나오고 즐거운 웃음소리가 가득하리라는 것은 강조하지 않아도 상상이 될 것이다.

이사야는 이 지역의 멸망에 대해 “즐거움과 기쁨이 기름진 밭에서 떠났고 포도원에는 노래와 즐거운 소리가 없어지겠고 틀에는 포도를 밟을 사람이 없으리니 이는 내가 그 소리를 그치게 하였음이라(사 16: 10)”고 말하고 있다. 예레미야 역시 “내가 포도주 틀에 포도주가 없게 하리니 외치며 밟는 자가 없을 것이라(렘 48: 33)”고 말했다. 매년 9월 경 이스라엘 곳곳에서 들려오는 이 기쁨의 소리가 그친다는 것은 곧 황폐함을 의미한다.

여호와는 이스라엘과 주변 지역의 신앙적 문제로 그들을 바빌론의 손에 넘겨주시리라 결정하였다. 그리고 그들의 노래와 즐거운 소리를 그치게 하였다. 인류 종말에 관련된 영화들을 보면 세계의 종말은 대부분 참으로 참혹하다. 어둡고 차갑고 잔인하기까지 한 미래에 대한 상상에 우리는 경악하기도 한다.

기쁨과 희망이 사라져 버린 암울함만이 가득한 모습은 우리를 공포로 몰아넣는다. 이러한 공포는 반드시 세계의 종말에서만 느끼는 것이 아니다. 세계뿐만 아니라 한 나라의 멸망, 아니 한 가정 혹은 한 개인의 파멸에서도 기쁨의 노래와 즐거운 소리는 그칠 수밖에 없다.

이 기쁨의 소리가 우리에게서 계속되기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 대답은 기독인으로서 너무나 뻔하지만 너무나 지키기 어려운 것이리라 생각한다. 여호와 안에 거하며 여호와의 뜻대로 살아가면서 오직 그분만을 나의 주로 매일 매일 고백해야 할 것이다. 그리할 때 나와 나의 가정, 나의 교회, 그리고 대한민국의 포도주 틀에 노래와 즐거운 소리가 끊이지 않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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