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많은 지도자들은 행정에 대한 개념을
이 세상에 모든 사람은 조직(organizing)에서 태어나 조직에서 살다가 조직에 의해서 세상을 떠나게 된다. 그러기에 인간은 조직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으며 조직을 무시하고 행복을 누리기는 어렵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교회란 두 세 사람 이상의 크리스천 공동체(community)를 에클레시아, 즉 모이는 교회라 칭한다. 행정이란 두 세 사람 이상의 조직 공동체의 목표를 보다 효율적으로 달성하기위한 수단 방법 과정을 행정이라 말한다. 그렇다면 교회도 일반 세상 조직 공동체와 같이 조직행정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음을 교회 지도자들은 인식하고 인정하며 조직행정에 능숙한 자가 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한국교회 많은 지도자들은 행정에 대한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고 등한시 하거나 무시함으로 오늘날 교회와, 지방회, 총회까지 조직의 균열과 충돌을 반복하며 몸살을 겪고 있음을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
조직이 보다 효율적으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가장 기본적인 계층제의 원리(hierarchy)가 적용 되어야한다. 계층제란 역할체제(System of roles)의 일종으로서 권한과 책임의 정도에 따라 형성되는 상하 관계를 말한다. 계층제는 조직의 통합성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기본적인 요소로 인정되어왔다. 계층제의 원리는 조직의 구조를 수직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성립하게 되는데, 최고 관리층, 중간 관리층, 하부 관리층, 좀 더 구체적으로는 국장 과장 계장 주임 담당 등과 같은 분류가 바로 그것이다.
계층제가 형성되기 위해서는 우선 지휘력(leadership)이 있어야 한다. 여기서 리더십이란 조직 설계자로서의 지휘자가 전 계층의 수와 크기에 관한 설계능력, 계층 속의 구성원에 대한 관리능력, 그리고 업무의 배정 및 관리능력을 가지고 있어야한다. 다음으로는 계층제가 성립되려면 권한과 책임이 위임되어야 한다. 계층제의 상하관계는 권한과 책임의 관계로서 양자는 동시적 위임의 성격을 지닌다. 권한과 책임이 분리되었을 경우 그것은 계층제의 원리에 위배된다.
이 세상 조직 가운데 가장 강력한 조직이 군대인데 군대는 대부분의 나라들이 5층제를 가지고 있다. 1층 사병층, 2층 부사관층, 3층 위관층, 4층 영관층, 5층 장군층으로서 상하관계가 정확하여 흔들리지 않는다. 그러기에 나라마다 5층제의 군대조직을 통해서 국가의 안위를 책임지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고 있으며 종교적으로 가장 강력한 종교조직은 역시 천주교 조직이며, 그 다음이 구세군 조직이라고 할 수 있다.
교황과 추기경의 권한과 책임은 너무 분명해서 일반 신부들이 감히 도전할 수 없기에 전 세계 9억명에 달하는 천주교인들이 교황의 권위와 명령 앞에 굴복함으로 천주교 조직은 국가조직처럼 교황청 대사까지 가지고 있지 않는가? 5층제의 군대 조직처럼 천주교 조직을 그대로 유지하여 분열과 다툼과 분쟁하는 모습을 본적이 있는가? 그러기에 세상 조직에 속한 사람들이 볼 때에 천주교 조직이 신선하게 비춰져 김수환 추기경 이후에 한국 천주교 조직은 1980년대 200만에서 500만을 넘어 성장하고 있으나 개신교 조직은 1980년대 1000만명에서 2000년대에 800만명 이하로 계속 줄어들고 있으며 교단별로 보면 가장 큰 교단이 300만을 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한다.
개신교 교단 중에 그래도 가장 무난하게 조직을 보존하며 유지하며 하나 된 모습으로 사명을 다하는 교단이 웨슬리언 구세군 조직이다. 구세군 조직도 천주교처럼 5층의 계층제 원리를 유지하면서 책임과 권한을 분명하게 위임하기에 적은 숫자지만 분쟁이나 다툼이 없이 세상에 빛과 소금의 역할에 다함으로써 조직의 균열과 분쟁을 피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의 창설로 영적인 신앙 콘텐츠는 르네상스를 통해서 문예부흥과 민주화를 이룩하는 데는 혁혁한 공을 세웠으나 외형적인 행정조직은 뒤죽박죽이 되어버려 공허와 혼돈을 거듭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게 되었다. 물론 기독교도 형식상의 계층제는 적용하고 있는바 예컨대 1층 평신도, 2층 집사, 3층 권사 및 안수집사, 4층 장로, 5층 목사 등으로 구분되어 있으나 목사와 장로의 권한이 대등하며 권사와 안수집사의 권한과 책임이 애매하며 집사와 권사 안수집사의 책임과 권한이 구분 짓기 어렵다.
특별히 목사들에게 있어서 계층은 생각조차 할 수 없다. 아마도 초대교회 다락방 조직을 택했다고나 할까? 2층도 아닌 그렇다고 1층이라 하긴 그러한 계층 3층도 아닌 그렇다고 2층이라 하긴 곤란한 다락방 계층이 오늘의 개신교 조직이 아닐까 싶다.
그러기에 끊임없이 층간 다툼과 분쟁이 계속될 수밖에 없으며 솔로몬의 재판도 무효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개신교는 목사가 되는 과정과 절차도 구분이 없으며 목사가 된 후는 아예 계층이 없기에 더더욱 갈등과 분열이 불가피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개신교가 천주교 조직으로 환원할 수도 없고 구세군처럼 조직을 계층화 할 수도 없으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영국에서 설교가 가장 뛰어난 조지 휫필드(George Whitefield)는 사라졌지만 조직이 뛰어난 웨슬리의 후예들은 오늘까지 전 세계 2억명 이상이 남아 있다는 것은 조직행정의 계층제 효과가 얼마나 중요한지 일깨워 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