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혜 대통령 탓일까? 이 시대를 휘어잡은 유행어는 단연 ‘창조적’이라는 낱말이 아닐까 싶다. 창조적 경제, 창조적 정치, 창조적 교육 등 무슨 말 무슨 현상에든지 창조적이라는 말이 ‘금일 충청도 명일 경상도 식’으로 갖다 붙여지고 있다. 그 말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아직은 실체가 분명하지 않지만 일부에서는 창조적 목회라는 말까지 슬금슬금 꺼내드는 낌새다. 유행은 여인들의 마음만 휘어잡는 게 아닌 모양이다.

▨… 오늘의 성결교회 목회에서 창조적 목회란 말을 사용한다면 그 목회, 그리고 그 교회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창조란 말 속에는 필연적으로 새로운 것을 만든다는 의미가 포함될 수밖에 없으므로 그것은 기존의 것들을 부정하거나 깨뜨릴 수밖에 없다. 그 점에서 창조는 모험이고 도전이다. 그러므로 창조적 정신의 소유자는 반쯤은 저항적이어야 하고 반쯤은 자신을 포기하고 희생할 각오여야 한다.

▨… 우리나라의 학교 교육과정은 철저하게 ‘조직인(Organization man)을 길러내는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인간을 양성해야 한다는 목표 때문에 주어진 상황에 타개보다는 타협하고 창조력 보다는 적응력이 강조되고 있다. 개성이 존중되기 보다는 순응의 논리를 통해 일치와 획일에 길들여지게 하는 것이 오늘의 우리나라 교육의 실상인 것이다.

▨… 우리교단의 목회자 양성과정도 이에 조금도 다름이 없다. 마치 ‘프로크루테스의 침대’를 흉내 내듯 작으면 늘리고 크면 자른다. 138명의 새 목사들도 어떤 규격만 갖추도록 훈련된 것은 아닌지 조금 걱정스럽다. 이런 교육과정을 통해서도 이태석이나 레오나르도 보프(Leonardo Boff), 가가와 도요히꼬 같은 자기를 버리는 전도자들이 양성될 수 있을까. 오늘의 교회가 자본주의의 논리에 매몰당하고 있다는 비판을 언제까지 외면할 것인가.

▨… 예수님은 현상유지(status quo)를 받아들이지 않으셨다. 그분은 당시의 종교생활과 예배형식을 깨뜨리셨다. 그분은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이,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라는 문제에 붙잡혀 허우적거릴 때 하나님이 내게 원하시는 것은 무엇인가를 물으셨다. 그리고 자기를 포기하셨다. 목회에도 창조적이라는 말이 적용될 수 있다면 더 늦기 전에 물어야 한다. 우리교단의 신학교육은 하나님의 사람을 위한 것인가, 교단에 적응하는 조직인을 위한 것인가를….     

저작권자 © 한국성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