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이 부른 저주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 하신지라(창 35:1)

쌍둥이 형 에서의 발꿈치를 붙들고 세상에 처음 나왔을 때부터 난 평생을 무엇인가 손에 넣기 위해 물이든 불이든 가리지 않는 욕망의 화신으로 살았다. 사냥에서 돌아와 배가 고픈 형을 먹음직한 죽으로 유혹해 장자권을 손에 넣고, 눈이 어두운 아버지를 속여 장자의 축복마저 가로챘다.

형을 피해 도망간 하란에서 외삼촌 라반과 치밀한 두뇌싸움을 벌이며 사모하던 라헬을 아내로 얻었고, 외삼촌의 가축들을 빼돌려 부자가 되는데 성공했다. 심지어 얍복강가에서는 하나님의 사자와 맞짱을 떠 이겼으며, 평생 마음의 짐일 수밖에 없었던 형의 환심을 사 극적인 화해도 이끌어 냈다.

그 때까지 난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손에 넣으며 살았다.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의 과정들이 그리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난 스스로 ‘위너’(winner)라 여기며 내 욕망을 충실하게 실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세겜에 정착하면서 난 위너에서 ‘루저’(loser)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나들이를 나갔던 딸 디나가 그 땅의 추장인 세겜에게 강간을 당하는 끔찍한 사건이 일어났다. 이어 두 아들 시므온과 레위가 디나와 혼인을 원하던 세겜을 설득해 할례를 받게 하고, 할례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던 그와 그 성의 남자들을 잔인하게 학살했다. 난 주변 족속들의 보복이 두려워 난 황급히 그 땅을 떠나야만 했다.
왜 내가 어느 날 갑자기 루저로 전락한 것일까?

그 때였다. 한 순간 모든 것을 잃은 사람처럼 깊은 패배의식에 휩싸여 고뇌하던 내게 하나님의 음성이 들린 것은. 그 음성 중 한 단어가 문득 내 가슴을 예리하게 할퀴었다. 바로 ‘벧엘’이었다. 광야의 밤에 사닥다리 꿈을 꾸었던 곳, 그 밤 할아버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이 드디어 나의 하나님이 되어 내 삶으로 들어오셨던 곳, 어쩌면 벧엘은 내 인생에서 하나님과 함께하는 진정한 시작이었는지 모른다. 아니 하나님을 향한 내 첫 마음이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난 너무 쉽게 벧엘을 잊고 살았다. 생각해 보니 하나님은 몇 번이고 내가 벧엘로 돌아가 첫 마음을 회복하며 다시 시작할 것을 원하셨지만 난 매번 그렇게 하지 않았다. 욕망의 성취가 가져다주는 승리의 기쁨과 환상에 얼큰히 취해 하나님을 향한 첫 마음에서 너무나 멀리 와 버렸던 것이다. 결국 삶이 만신창이가 될 만큼 너무 많은 것들을 잃어버린 후에야 난 누가 자신의 인생의 위너가 되거나 혹은 루저가 되는지를 알았다.

내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 업적과 성취가 위너와 루저를 결정짓는 절대적 기준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내 결론은 하나님 앞에서 첫 마음을 잊지 않는 자만이 진정한 위너가 된다는 것이다. 아무리 많은 것을 손에 쥐었다 해도 자신의 벧엘을 잃어버리고, 하나님을 향한 그의 첫 마음을 잊은 자는 루저일 뿐.

첫 마음을 잊은 채 성공한 루저보다는, 때로 실패하더라도 다시 첫 마음으로 돌아갈 용기를 발휘할 수 있는 위너가 더 위대하다는 것을 내가 루저가 되기 전에는 정말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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