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네 속담이나 격언 중에는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어디 있느냐’, ‘물이 너무 맑으면 물고기가 살지 못 한다’, ‘사회생활에는 적당히 살 줄 아는 요령이 필요하다’는 등의 말이 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꼭 있어야 할 지혜를 적절하게 표현하며 권하는 말이다. 그런데 내가 평생을 섬기며 받들어 온 성경에는 그렇게 살라는 지침이나 명령은 없다. 가르쳐 경계로 삼아야 하는 지혜서 ‘잠언’에서 조차도 그런 권면은 없다. ‘노하기를 더디하라’던가, ‘게으르지 말라’, ‘온갖 악행을 멀리하라’ 등 권선징악의 말씀을 기록하며 그대로 살라 명령하고 있다.

요즈음 나는 신앙인으로서 새삼스럽게 이러한 원론적인 논리를 놓고 고민하는 웃기는 꼴을 하나님 앞에 보여드리고 있다. 칠십여 년에 가까운 세상살이를 겪으면서 신앙경륜을 쌓아온 내가 순진하게도 이런 갈등에 서게 된 것은 참으로 불쌍하고 처절한 모습이어야 한다. 내 고민의 핵심이 세상살이에서 얻은 것들이었다면 ‘아직도 그렇게 진솔하냐’는 비웃음으로 넘기고 말겠지만 교회들과 교단 안에서 벌어지는 성직자들의 일이니 나의 슬픔을 감출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의와 공평을 행하는 것은 제사를 드리는 것보다 여호와께서 기쁘게 여기신다’는 우리가 지켜야 할 금과옥조 같은 성경말씀은 시대가 변하고 발전했으니 폐기되어야 한다는 말인지, 아니면 적당히 덮어가며 융통성 있게 활용하자는 뜻으로 해석하는 새로운 신학이 발전했다는 것인지…. 그렇다면 그런 신학문이 보급되어서 목회현장에서 시행되는데 부담이 없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는 부끄러워 할 일도 없을 터이니 참 좋겠다. 내 이 작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노력은 안 해도 되지 않을까.

의인 열 사람이 없어 소돔과 고모라성이 망했다면 지금의 우리는 어떠냐고 소리 지를 수 있나, 우리 모두가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으니 함께 망하자고 고백할 수 있나, 누가 우리에게도 손가락질을 할 수 없으니 그냥 적당히 가자고 달래며 가는 게 최선의 길이란 말인가!

세상이 교회와 교단과 그리스도인을 걱정하는 시대는 이미 훨씬 지나갔다. 이제는 우리가 저주받아야 하는 시대를 우리가 자초한 게 아닌가. 불감증에 중독된 우리는 성경에 비추인 누추한 꼴을 바로 바라볼 줄도 모른다. 그 말씀이 내가 바라보아야 하는 나의 거울인지를 모르게 되었다. 적당히 사는 게 좋다는 신 신학 때문이다. 누가 그 훌륭한 신학을 가르쳤는가.

주님 앞에 지켜야 하는 지조와 정절은 우리의 올곧은 신앙이다. 우리는 여호와 앞에 정결하여야 한다. 하나님 앞에 거룩하고 사람들에게 깨끗하던 성결교회는 존경받고 칭찬 듣던 그리스도인들이 아니었던가. 우리는 타락한 흙탕물에 적당히 안주하며 이대로 마냥 흘러갈 수는 없지 않은가. 적당히는 안 된다고 성경은 경고하고 있다. 세상을 구원해야 하는 교회에 내리신 명령을 잘 실천하려면 우리는 함정에 빠진 나 자신을 먼저 구해야 한다. 적당히는 안 되는 일이라고 애원하는 소리를 더 이상 외면하면 훗날의 재앙을 누가 감당하게 될까 걱정해야 한다.

복잡하고 다원화된 세상에서 수천 년 전에 기록한 성경을 지키며 순수 복음주의를 고수하려면 우리는 성경 원리에 더욱 충실하여야 한다. 적당히 현실에 적응해 편법에 물들게 되면 붕괴되는 둑을 막을 길이 없게 될지도 모른다.

넘쳐흐르는 물을 누가 막을 수 있을 것인가? 이슬람 원리주의를 보라. 타락과 편법으로 그들의 원리를 현실적으로 적절히 변화시키려는 세력을 몰아내려고 똘똘 뭉치고 있다. 그 힘이 강력하다. 외부의 도전과 유혹을 배척한다. 그렇게 하므로 원시 원리주의를 고수한다. 그 자체는 분명히 미련하고 답답한 현상이지만 거기에 우리가 배울 것이 없을까. 우리는 쉽게 현실과 타협하려고 한다. 하지만 타협해서 십자가를 지지 않으려 했다면 기독교는 존재하지 못했다.

우리가 지키며 간직해야 하는 소중한 것을 잃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적당히 하려는 실사구시는 우리 신앙인들에게는 아주 위험한 함정이 될 것이라는 경고를 외면하지 말았으면 한다. 지혜를 편의로만 개발하면 신앙인의 공의와 정의는 무너진다. 무지하고 힘없는 평범한 신앙인들은 염려와 걱정이 많아 기도하며 슬퍼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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