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6:30~31)

가끔 불신자들로부터 이런 말을 들을 때가 있습니다. “요즘 세상에 믿는 사람이라고 해서 안 믿는 사람과 다른 점이 있나요?” 우리는 이런 말의 배후에 깔려있는 심각성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사람들의 이 판단은 이제 교회와 세상, 신자와 불신자를 구별할만한 기준이 별로 없다는 사실을 꼬집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 현실을 보아도 세상과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입니다.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 중심이 아니라 사람 중심으로 살기 때문입니다. 사람 중심으로 사는 사람은 사람의 눈을 무서워하고 사람의 눈에만 들려고 애를 쓰게 됩니다. 또 사람 중심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사람의 귀를 두려워합니다. 내가 하는 소리 들을까봐 사람을 두려워하는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사람은 다릅니다. 사람은 보지 못해도 하나님은 전부 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못 들어도 하나님은 전부 듣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몰라도 하나님은 전부 알고 계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속일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사람은 ‘사람이 보느냐? 보지 못하느냐?’하는 것은 상관없습니다. ‘사람이 듣느냐? 듣지 못하느냐?’하는 것을 전혀 상관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아느냐? 모르느냐?’라는 것도 별로 개의치 않습니다. 하나님이 전부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사람은 사람이 있든 없든 전혀 상관없이 항상 경건하게 살아갑니다. 즉 투명하게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혼자 있을 때 여러분의 생활은 어떻습니까? 한 번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이 있을 때는 괜찮은데 나 혼자만 있을 때 내 생활의 모습은 어떠한가?를 말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제자들은 ‘자기들의 행한 것과 가르친 것을 낱낱이 고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고하지 않아도 예수님은 전부 알고 계십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자기들이 행한 일, 가르친 일, 전도했을 때 성공한 일, 낭패를 당한 일 등을 낱낱이 고하고 이야기를 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제자들처럼 우리의 삶의 모든 일들을 주님께 말씀드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나의 삶 전체를 주님이 보실 때 부끄럼 없도록 투명한 생활을 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생활이 달라집니다. 누가 보아도 부끄러움이 없고 떳떳해 집니다.

파스칼의 소품 집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항해사가 한번은 배를 타고 멀리 바다에 나갔다가 파선을 했습니다. 함께 탔던 사람들은 다 바다에 빠져 죽었는데 이 항해사는 용케 이리 저리 떠밀려 다니다가 어떤 섬에 상륙을 했습니다.

그 항해사가 섬에 닿자마자 섬사람들이 몰려들더니 “대왕 만세!”라고 부르고 야단이었습니다. 그 섬사람들이 “대왕 만세”를 부른 까닭은 자기의 왕이 한 달 전에 행방이 묘연해졌는데 지금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그 항해사가 자기의 왕과 똑같이 닮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자기의 왕인 줄 알고 “대왕 만세”하면서 왕궁으로 모시고 온갖 대접을 다 했습니다.

이 항해사는 속으로 ‘그게 아닌데’라고 생각하면서도 대접을 받고 영광을 하루 이틀 받다 보니 ‘나는 가짜 왕이요’라는 말을 해야 되는 줄 알면서도 시간이 지나서 하지를 못했습니다. 섬사람들의 대접이 극진할수록 양심이 괴로웠습니다. 그러면서도 재미는 좋았습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 양심의 가책은 한없이 받으면서 엄청나게 재미 보는 일은 없습니까? 재미 보는 일 때문에 한없이 양심이 괴로운 일은 없습니까? 바로 그 사람이 가짜 왕입니다.

우리는 주님 앞에서 가짜 노릇을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믿지 않는 자들과 삶의 패턴이 완전히 다른 존재들입니다. 결코 더렵혀지거나 세상 사람들 발밑에 짓밟히는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 모두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거룩한 제사장답게 정직하고 투명한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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