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를 위한 애가(哀歌)

그 후에 아브라함이 그 아내 사라를 가나안 땅 마므레 앞 막벨라 밭 굴에 장사하였더라 (마므레는 곧 헤브론이라)(창 23:19).

내 고향을 떠나 머나 먼 이곳 가나안을 향해 오면서 당신은 줄곧 침묵을 지켰지. 처음에 난 당신이 아무 보장도 없이 떠난 길이 너무 두렵고, 두고 온 형제와 친척들이 그리워서 말을 잃은 줄 알았어. 나도 그랬으니까. 하나님의 약속만 붙들고 떠난 길이었지만 가장으로서의 무거운 책임감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았고, 불확실한 미래가 어쩐지 불안했지.

시간이 많이 흘러 우리가 하란을 떠나던 일을 추억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모든 것이 안정이 되었을 때, 당신이 내게 했던 말을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해. 당신도 두려웠지만 나를 신뢰했기에 먼 길을 따라나섰고, 가는 동안 내내 침묵을 지키며 그 침묵의 무게만큼 나를 잠잠히 믿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말이었지.

가나안에 도착한 얼마 후 기근을 만났던 것 기억나? 약속 받은 땅을 밟자마자 당신과 나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굶주림이었어. 살기 위해 애굽에 갔고, 당신을 뺏기고 싶지 않아 당신을 내 누이라 속이기도 했었지. 당신은 그 때도 별 말이 없었어. 그저 나를 믿고 따라주었고, 늘 내 곁을 지켜주었지.

무엇보다 오랫동안 임신이 되지 않아 당신의 마음고생이 심했지. 하나님께서 분명 자손의 약속을 주셨지만 그 성취가 늦어지면서 애를 태우는 당신을 지켜보는 나도 쉽지는 않았어. 난 사실 당신이 더 소중했거든. 하나님의 약속과는 다르게 결국 자식을 낳지 못한다 해도 난 일평생 당신을 사랑했던 것으로 모든 보상이 될 거라 생각했어.

어느 날 당신이 임신한 것 같다며 부끄럽게 말을 꺼낼 때도 믿기지 않았지만 이삭이 태어나던 날은 평생 잊을 수가 없을 거야. 구십이 된 당신이 아이를 낳기 위한 해산의 고통을 겪으며,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넘나들고 있을 때, 난 제발 당신이 무사하기를 기도하고 있었어. 하나님께 당신을 지켜달라고 부탁하고 있었지.

아기 울음소리를 듣고 장막으로 뛰어 들어갔을 때, 당신은 갓 낳은 이삭을 품에 앉고 있었지. 헝클어진 머리에 온통 땀으로 범벅이 된 모습이었지만 당신은 이삭을 보며 미소 짓고 있었어. 내가 기억하는 한 당신의 그 모습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것 같아. 얼떨떨한 표정으로 당신을 쳐다보는 내게 당신을 이삭을 들어 보이며 조용히 웃어주었지.

그렇게 40년 가까운 세월을 가나안에서 함께 했던 당신을 내 손으로 막벨라 굴에 장사하던 날, 난 세상이 끝나는 것 같았어. 마지막 눈을 감으며 당신은 나에게 갓 난 이삭을 보여줄 때처럼 그저 웃어주었지. 그런 당신을 차가운 굴에 혼자 두고 나오면서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어. 어미를 잃은 이삭이 애처롭기도 했지만 당신 없는 삶이 내겐 저주같이 느껴졌기 때문이야.

당신을 사랑했다는 말을 동굴 앞 땅바닥에 쓰고 왔어. 이젠 더 이상 울지 않을 꺼야. 비록 죽음이 당신과 날 갈라놓았지만 죽음보다 더 크신 하나님 안에서 우린 언젠가 다시 만날 테니까. 그곳이 우리에겐 진정한 가나안이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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