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사회적, 정치적으로 만연 되고 있는 복지 포퓰리즘의 치우침은 핵심 성장인구의 감소와 더불어 성장과 발전의 저해요인을 가져올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현실이다. 또한 치열한 국내외적 정치·경제적으로 볼 때 특히 우리와 가까운 이웃나라의 정치지도자들의 교체와 국내외의 경쟁관계의 어려움 속에 냉엄한 현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좁은 국내의 울타리 안에서 현실에 안주하려는 나만의 현실 만족주의는 아닌지 돌이켜 보아야 한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최고의 지도자는 나라를 안팎으로 튼튼하게 세우고 국민들에게 행복을 심어주어야 한다. 과거에는 나라가 잘되는 것이 우리가 잘되는 것이라는 인식이었다면 이제는 우리가 잘되는 것이 나라가 잘되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 오늘의 국민들의 트렌드인 것이다.

이처럼 혼란한 오늘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오직 공의(公儀)를 승상하고 의(義)를 구하라’를 통하여 오늘날 우리는 의(義)로운 자(者)라는 말을 들을 수 있는지? 의(義)보다는 이(利)를 추구하지 않았는지? 대의(大義)를 버리고 소이(小利)에 급급하지 않았는지? 교세를 말할 때 의로움보다 숫자에만 대비하지 않았는지? 청지기 같은 사람 중심의 세상보다는 물질 중심으로 치우치지 않았는지? 생각해야 한다.

이제는 예수님 말씀대로 살아가는데 비중을 두어야 되며 의(義)로운 목회자와 성도가 되어야 한다. 예수님의 정신은 남을 이해하고 섬기는 삶이며 남을 먼저 대접하고 치유하는 마음이다. 또한 예수님은 이렇게 말했다.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에게 베푼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라고.

가르침을 항상 기억하고 실천하는 것이 예수님의 말씀이라고 하였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서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그러면 우리 이웃은 누구인가? 모든 사람이 스치고 지나가는 아무도 돌보지 않는 보잘 것 없는 사람이 진정 우리 이웃이다.

지금까지 우리의 생각이 잘못 되었다면 바른 생각으로 돌아가야 한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실신한 사람이 되게 하고 버리고 갔더라 하였다. 그때 한 제사장도 그냥 지나갔고 그리고 한 레위인도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갔지만 어떤 사마리인은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돌보아 주었더라 하였다.

우리는 누가 강도를 만나 어려움이 있는 자의 참 이웃이 되었느냐를 반문해 본다.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라고 하였다.

우리는 혹시 지금까지 우리의 울타리 안에서 높은 성벽을 쌓기만 하고 보잘 것 없는 이웃에 대하여 상통에 소홀히 하지 않았는지 돌이켜 보아야한다. 교회의 사회적 공헌 활동은 성도들의 만족에 그치지 않고 교회의 발전과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중요한 행동의 하나인 것이다. 이러한 공헌 활동은 진정한 우리의 이웃, 나아가 불의의 교통사고 피해자, 난치병, 독거노인 청소년, 각종 어려움을 겪는 이가 이웃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어려운 분들을 위하여 국제적으로 월드비전, 유니세프 등 국내적으로는 각 기업, 사회단체에서 나눔 활동으로 지속적으로 사회 공헌활동을 하고 있다. 익히 들어온 한국야쿠르트 아줌마의 김치담금활동, 굿네이버스, 각 금융기관, 제반사회단체 등에서 구제활동과 장학사업. 도서관 건립을 통한 청소년 아동들에 대한 지원이 이어지고 왔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간 교회 혹은 각 교단이 개별적으로 수행해 오던 섬김의 사역도 한국 교회 이름으로 하나로 엮어 한국기독교사회복지협의회, 한국교회 희망봉사단으로 하여금 사회복지, 재해구호 자원봉사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

지난날의 서해안 원유 유출사고 자원봉사, 2009년 필리핀 수해, 아이티의 지진 등의 재난구호, 용산참사 피해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희귀 난치성 질병환자 등의 지원 및 중재 사업을 진행해오고 있다. 이러한 자원 활동은 사회 구성원의 어려움을 보듬어 주는 공헌으로써 많은 교회와 일반인 및 성도들에게 보다 많이 알려져야 한다.

이러한 사업의 원활한 역할을 위해서는 뜻있는 교회로부터 큰 후원이 이루어져야 되고 사회적 공헌도를 높여 나갈 때 사회적 책임을 다하게 되는 것이다. 2009년도에 있었던 개신교 지도자들의 사례비의 1~5% 이웃사랑 나눔 운동도 지속적으로 그리고 여유있는 교회로 확대되고 예산부분에서도 구제비를 편성하여 사회의 고통을 분담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또 우리의 이웃을 찾는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데 우리 모두가 앞장서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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