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둠의 시절을 살면서 이런 시를 쓴 시인이 있었다. “지금 신문사에 있거나/ 지금도 대학에 남아있는 사람들은 다 불쌍한 사람들이다/ 자, 들어라 지금 잘 먹고 잘 사는 사람들은 지금의 잘 먹음과 잘 삶이 다 혐의점이다/ 그렇다고 자학적으로 죄송할 필요는 없겠으며/<제발 좀 그래라>/ <악으로> 그 속죄를 위해서 이 시를 쓰는 것은 아니다/ 이름을 위해 우리가 사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 말도 나는 간신히 한다/…하느님 정말 불쌍합니다.”(황지우·같은 위도 위에서)

▨… 주님께서는 3년을 함께 지내며 숙식과 고락을 함께한 제자들에게 물으셨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버려두고”(눅 5:11) 당신을 좇은 제자들의 마음을 모르셨던 것일까, 아니면 의심하셨던 것일까. 아닐 것이다. 자신의 생명까지도 내어놓아야 할 제자들의 내일을 바라보셨기에 그들의 믿음의 실체를 재확인시켜주고 다지기 위해 질문하셨을 것이다.

▨… 오늘도 주님께서 주님을 따른다는 이들을 향하여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라고 물으신다는 것이 우리의 믿음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우리 성결교회를 혼란하게 만드는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 총회장은, 총무는, 주님의 물으심에 대하여 누구보다 확신에 찬 답을 갖고 있음을 믿는다. 그러므로 임시총회까지 가기 전에 사태를 해결할 것이라고 우리 성결인들은 기대하고 있다.

▨… 어느 신학자(위르겐 몰트만)가 말했다. “교회가 진정 기독교적인 교회인가 아닌가 하는 것을 결정하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 자신이다. 이 사회에서 기독교 자신이 소외되고 분리되어 인간을 억압하는 도구가 되느냐 아니냐는 십자가에 달린 그분이 기독교에 대하여 어떤 낯선 자인가 아니면 기독교의 실존을 결정하는 주님인가에서 결정된다”

▨… 총회장이나 총무는 아무나 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아무나 하려고 해서도 안된다. 그렇기에 “자학적으로 죄송할 필요는” 없겠지만 우리 성결인들의 지도자이니만큼, 황지우의 시를 빌려 <제발 좀 그래라>는 마음을 챙겨주었으면 한다.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께서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고 지금 물으시는데 이 혼란이 정리되지 않고 지속된다면 성결교회는 더 이상 주님의 교회일 수 없다. 하나님, 정말 불쌍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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