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이 부르는 웃음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이르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창 4:8,9)

난 타고난 농부였지. 모든 농부의 삶이 그렇듯 곡식을 추수할 때까지 최선을 다해 농사를 지었어. 그런 내 정성을 알아주는지 곡식들을 언제나 잘 자라주었지. 심는 것마다 기대 이상으로 풍성하게 열매를 맺었으니까.

그 해에도 하나님께 제사를 드려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지. 추수를 마친 후 내 곳간은 그 어느 해보다 풍족했지만 오히려 그래서일까? 왠지 마음 한 구석에서 곡식의 일부를 제사를 위해 허비하는 것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어. 내가 땀 흘려 얻은 것이니까 이미 농사를 지으며 땅에 흘린 엄청난 땀으로 그 값을 다 지불했다는 생각에까지 미쳤지.

내 아우 아벨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지 슬쩍 궁금했지만 그에게 지기 싫은 마음에 그냥 제사를 드리기로 마음을 먹었어. 제물로 드릴 곡식에 은근히 남는 미련을 감추고 그 어느 때보다 멋진 제사를 드렸다고 확신했지. 아벨의 제사 보다는 훨씬 근사한 제사였다고 믿었기에 그 앞에서 보란 듯이 어깨를 우쭐거리기도 했지.

그런데 하나님은 내게 속을 분이 아니셨어. 아벨의 제사만을 기쁘게 받으시고, 내 제사는 기뻐하지 않으셨어. 그 사실을 알게 된 순간 난 화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어. 일 년 내내 열심히 농사지은 것을 아까운 마음을 접어두고 제물로 드렸는데, 결국 내게 돌아오는 것은 하나님의 거부였다고 생각하니 더 이상 통제할 수 없는 분노에 휩싸였지.

난 핏발이 선 눈으로 내 분노를 잠재울 희생물을 찾았어. 곧 내 눈에 들어온 것이 아벨이었지. 내가 하나님께 거부당한 것은 바로 그 때문이라는 판단이 서자 그가 죽도록 미워졌어.

어느 날 분노를 감추고 그를 들판으로 데리고 나갔어. 힘으로 그를 쓰러뜨렸지. 영문도 모른 채 불안이 가득한 눈으로 날 응시하는 그에게 난 미움과 증오의 말들을 거침없이 퍼부었어.

부르르 떨리는 손으로 옆에 있던 돌을 주워들었지. 그리곤 생명을 구걸하는 그의 공포에 질린 얼굴과 떨리는 목소리도 아랑곳하지 않고 몇 번이고 내리쳤어. 정신이 들었을 땐, 아벨은 이미 숨져있었고, 내 손과 몸은 온통 그의 피로 물들어 있었지. 난 돌을 내려놓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어.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 상황 앞에서 난 그만 울음을 터뜨리고야 말았지.

두려웠어. 너무나 두려웠어. 그렇지만 다시 정신을 차리고 그의 시체를 수풀에 숨기고는 냇가로 가서 피를 닦았지. 잠시 잔잔해진 냇물에 내 얼굴을 비추었어. 살인자의 얼굴을 감추는 미소를 연습했지. 다시 물로 얼굴을 닦으면서 난 계속 태연한 웃음을 연습했어. 잠시 후 다시 물에 비춘 내 얼굴엔 그럴듯한 미소의 가면이 씌워져 있었지.

사람들은 이런 날 비정한 살인자며 비열한 위선자라고 욕하겠지? 그렇지만 그럴 자격이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수많은 가면을 삶의 지혜로 둔갑시키고, 타협을 적응으로 미화시키며, 마음속에선 잔인한 살인을 서슴지 않으면서 겉으론 인자한 웃음을 연습하고, 예배를 하나님 앞에 차려드리는 중심 없는 잔칫상쯤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과연 날 비난할 수 있을까? 날 비웃을 수 있을까? …

이번호 부터 뉴질랜드에서 목회하고 있는 배태현 목사가 ‘성경 인물의 생생 토크’를 연재한다. 배 목사는 성경 속 인물들의 이야기를 소재삼아 ‘그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고민을 했을까’ 되짚어 풀어내며 이를 통하여 오늘을 사는 신앙인이 얻어야 할 참된 교훈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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