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브랜든(S.G.F Bradon)은 ‘예루살렘의 멸망과 기독교회’에서 빌라도의 법정을 비판하였다. 그에 의하면 빌라도의 법정은 정의를 구현할 의지는커녕 정의가 무엇인가도 모르는 어처구니 없는 법정이었으므로 그 판결은 원천적으로 무효라고 결론내렸다. 법철학의 대가인 라드부르흐(G. Radbruch)도 무소신의 빌라도적 태도는 퇴영적인 견유주의(cynicism)이며 이것은 법정의 금기사항임을 지적했다.

▨… 빌라도의 법정에 선 예수님은 초연하고 당당하셨다. 그것은 자신의 죄 없음에 대한 확신 따위에서 생겨나는 태도가 아니었다. 그분에게는 그 법정 자체가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기 위한 자리였으므로 법이나 재판 절차의 정당성 따위는 관심 밖이었다. 성서의 기록에 의하면 오직 하나님의 뜻의 구현을 목표로 그분은 하나님의 계획에 순종하였다.

▨… 예수님의 그와 같은 모습에서 도스토예프스키는 그리스도인의 원형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 것일까. 사랑과 용서를 입에 달고 있으면서도 물욕과 이기심에 젖어있는 그리스도인들의 모순을 냉혹하게 고발했던‘백치’에서 진정한 그리스도인을 상징하는 인물로 ‘미쉬킨’을 내세웠다. 그가 그린 천사에 가까웠던 신앙인 미쉬킨은 우리의 관점에선 백치였다.

▨…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며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 어쩌자고 주님께서는 이런 인간의 모습을 제시하셨을까. 자신이 백치(白痴)가 되지 않고서는 실천할 수 없는 주님의 명령 여기에 우리 신앙의 한계와 슬픔이 있다.

▨… 1월 22일의 총무 보선이 공고되었다. 총회장 불신임을 위한 임시총회소집안도 발의되었다. 도대체 있을 수 없는 일이 또 결코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총무가 전권위 결정을 수용하든지(그 결정의 옳고 그름은 그 다음 문제다), 총회장이 자신의 결재를 번복하든지(그 결정의 옳고 그름도 그 다음 문제다) 임시총회 소집은 피해야 한다. 두 분 가운데 한 분이 빌라도의 법정을 생각하며 우리의 백치가 되어줄 신앙은 없는지 묻고 싶다. 너무 무리한 요청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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