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왈드 스미스는 ‘구령의 열정’이라는 책에서 “일반적으로 대개의 교회는 어떤 큰 결과를 목표로 삼지 않고 그저 운영해 나가는 것같이 보인다. 여러 사람이 설교하지만 실제로 어떤 위대한 일이 일어날 것은 별로 기대하지도 않고 꿈도 꾸지 않는다. 우리는 얼마나 멀리 떠내려 온 것일까? 왜 이렇게 무기력해졌는가?”라고 탄식한다.

오늘 교회의 사명은 영혼의 구원이다. 진정 죽어가는 영혼의 인도 없이 단순한 이동에 불과하다면 참으로 슬픈 일이다. 존 웨슬리는 “우리가 할 일은 오직 영혼을 구원할 일뿐이다. 이 일에 시간을 보내고 또 사용되어야 한다. 설교를 많이 하는 것이 우리의 직분이 아니다, 가능한 한 많은 영혼을 구원하는 것과, 가능한 많은 사람을 회개케 하고, 거룩함 가운데서 성장해 가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이 우리의 직분이다. 이 거룩함이 없으면 아무도 주를 볼 수 없다”고 말한다.

웨슬리의 말대로 영혼을 살리는 설교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단순히 지적인 만족을 주거나 가벼운 만담을 즐기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살아있는 생명의 말씀이 약동하는 그래서 가슴을 치며 탄식하고 죄를 회개하고 눈물로 하나님 앞에 나가는 심령의 변화가 일어나기를 바라는 것이다. 영혼을 살리는 설교, 그것은 아마도 사도행전에서의 베드로의 설교일 것이다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을 힘입고 한 번 말씀을 전하니 3천명이 회개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다.

영혼을 살리는 설교의 핵심은 복음이다. 그 복음의 핵심이 바로 요한복음 3장 16절일 것이다. 이효삼목사가 지은 ‘하나님은 사랑이시다’에 이 구절로 네 가지의 내용을 담고 있음을 지적한다. 하나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의 ‘사랑’이고, 또 하나는 “독생자를 주셨으니”라는 ‘희생’이다. 그리고 하나는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의 ‘믿음’이고, 마지막으로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하심이니라”라는 ‘구원’이다. 그러니까 사랑과 희생과 믿음과 구원이라는 네 가지의 차원의 하나님의 역사가 깃들여 있는 것이다.

오늘 교회 안에서 이 네 가지의 차원 역사가 일어나야 한다. 진정 하나님의 사랑이 넘치고, 요한일서 3장 16절에서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리라”한 것 같이 이웃을 위해 희생할 줄 알아야 하고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하신 것을 기억하고 믿음으로 살아갈 때에 구원의 역사, 심령이 구원, 다시 영혼이 소생케 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교회는 이것이 있어야 살아 있는 교회이다.

기도 없이는 영혼을 살리는 역사가 없다. 기도할 때에 성령께서 강하게 부은 바 되고 설교하는 동안 하나님께서 거룩하심과 위엄 가운데 임재하시는 것이다. 영혼의 떨림이 있는 시간들이 교회에 나타나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기도의 역사 없이는 불가능하다. 우리가 진정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이라면 당연히 구령의 열정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한 영혼 한 영혼을 위하여 눈물 흘리며 기도하는 시간들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제 교회가 영혼을 살리는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소원한다. 이 놀라운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서 우리 함께 기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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